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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도시 재개발 맞선 ‘잔다르크’들, 주민공동체 일으켜세우다

등록 2013-10-28 20:17수정 2013-10-29 13:58

홍콩 시내 샴슈이포 전철역 인근의 커뮤니티 리사이클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재활용품 매장 ‘호혜시장’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홍콩 시내 샴슈이포 전철역 인근의 커뮤니티 리사이클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재활용품 매장 ‘호혜시장’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현장 쏙] 도시혁신, 아시아를 바꾼다 ⑥ 샴슈이포 ‘리사이클링 협동조합’
홍콩의 빌딩 숲 뒤에도 실업난, 재개발 갈등 등이 도사리고 있다. 샴슈이포의 실직 여성 노동자들은 협동조합을 차려 재활용품을 거둬 되파는 매장을 운영하며 재개발 정책에도 함께 맞서는 지역 주민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홍콩 주룽반도 북쪽 샴슈이포 전철역 부근 운차우 거리의 건물 2층에 있는 ‘호혜시장’은 지난 9일 평일 오전인데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옷, 책, 인형, 자전거, 가전제품 등 다양한 재활용품들의 가격은 대부분 5홍콩달러(약 690원) 이하였다. 가구는 건물 뒤쪽 1층 매장에 전시돼 있었다. 그 옆 공간에선 수거하거나 기증받은 재활용품들을 분류하고 수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커뮤니티 리사이클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호혜시장은 재활용품을 사고파는 곳만은 아니다. 어귀에는 “주민들의 살 권리를 보장하라”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고, 협동조합이 발행한 지역 소식지가 놓여 있었다.

 협동조합은 애초 실직 여성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출발한 자생조직이었다. 그런데 샴슈이포 지역의 대표적 주민공동체로 성장하면서 최근에는 샴슈이포 재개발 사업에 맞서는 주민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협동조합 회의실에선 주민대책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벽면에는 ‘홍콩 4대 부동산왕’이라는 제목 아래 리카싱(리자청), 신홍기부동산의 쿽(궈)씨 일가, 리샤우키(리자오지), 청유퉁(정위퉁) 등 4명의 얼굴 사진과 그들이 소유한 부동산, 재산 등을 표시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영국 통치때 대표적 공업 지역
중국 반환뒤 실직여성들 급증
가난한 지역 전락…재개발 한창

여성노동자 자활·자립 꿈꾸며
부자들 쓰다버린 물건 되파는
재활용품 판매업 시작뒤 활기

시장 열어 주민 일자리 만들고
지역화폐 발행해 소속감 높여

 1860년 주룽반도가 영국 조차지로 넘어가기까지 샴슈이포는 중국의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이후 영국 통치 기간에 홍콩의 대표적 공업지역으로 변모했다. 주변에는 노동자들의 주택과 상가로 가득 찼다. 1980년대 홍콩 제조업체 노동자 100여만명의 80%는 여성이었고, 이들 상당수는 중소기업이 밀집해 있던 샴슈이포에 살았다.

 80년대 후반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자, 홍콩 제조업체들은 잇따라 중국으로 옮겨갔고 여성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됐다. 1968년부터 활동하던 여성 노동자 협동조합은 실직자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 타자 대행업 등에서 일할 수 있게 했으나, 90년대 후반 컴퓨터가 일반화되자 또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샴슈이포도 낡고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에 홍콩 정부(특별행정구)는 2001년 도시재개발국을 차려 샴슈이포 재개발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 일대 16곳에서 동시에 재개발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협동조합의 라이유엔메이 대표는 “허물지 않아도 될 건물까지 재개발 사업에 포함시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 6층 건물을 헐어내고 60층 건물을 지으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4대 부자는 산업을 일으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민들을 내쫓고 부동산을 개발해 세계적 부자가 됐다. 그들이 더 큰 부자가 되는 동안 샴슈이포의 서민들, 특히 여성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 협동조합이 실직 여성들을 위해 새롭게 발굴한 사업이 재활용품 판매업이었다. 2011년 세계은행 조사를 보면, 홍콩은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로 나타났다. 전세계 100대 부자 가운데 4명이 홍콩인인 반면, 홍콩 전체 인구 710만여명 가운데 130만명은 최극빈층으로 분류됐다.

 여성 노동자 협동조합은 2002년 커뮤니티 리사이클링 협동조합을 설립해, 사람들이 쓰다 버린 물건들을 수거해 손질한 뒤 되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10㎡쯤 작은 매장을 열었는데,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선별장까지 600㎡ 넘는 지금의 매장을 갖추게 됐다. 일자리를 얻은 여성은 상근자만 20여명이며, 수거·분류·보수·배달 등을 하는 비상근직까지 포함하면 수백명에 이른다. 협동조합은 재개발 사업에 대한 대응 등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사회복무부, 공공사업부, 금융재단부 등 5개 부를 가동하고 있다.

 라이 대표는 “재활용품 판매업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점 말고도, 중산층이 버린 물건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자원 재배치와 이에 따른 환경보호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사업은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재개발 사업 등 지역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응하는 일까지 조합이 떠맡게 됐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은 사업 활성화와 주민들의 소속감 강화를 위해 ‘지역화폐’도 발행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1만명을 넘어섰다. 회원들에겐 기부하거나 구입한 물품 가격의 10%만큼을 지역화폐로 주는데, 샴슈이포 지역 대부분 가게에서 실제 돈처럼 쓸 수 있다. 처음엔 진짜 돈처럼 종이로 만들었으나 최근엔 신용카드 형태로 바꿨다.

 이날 매장에서 옷을 산 빌마(45·여)는 “제품 질에 견줘 값도 싸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집에서 15분쯤 걸리는데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홍콩/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홍콩 북부 초이유엔 마을에 살던 코춘헝(왼쪽)과 어머니가 지난 10일 내년 입주 예정인 주택단지 공사장 앞에서, 고속철 건설을 강행하려는 홍콩 정부의 차별 정책에 저항했던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홍콩 북부 초이유엔 마을에 살던 코춘헝(왼쪽)과 어머니가 지난 10일 내년 입주 예정인 주택단지 공사장 앞에서, 고속철 건설을 강행하려는 홍콩 정부의 차별 정책에 저항했던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있다.

이주민 차별정책에 저항해 ‘새 보금자리’ 얻어

센카이 첫 이주민단지 새 초이유엔

원주민땅 빌려살던 500여명
고속철 건설로 쫓겨날 위기
이주민 정책 문제점 이슈화
올려받은 보상비로 마을조성

중국 경계에 가까운 홍콩 센카이(新界) 지역의 초이유엔 마을 인근 들판에선 요즘 주택단지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초이유엔 마을에 살던 50여가구 150여명이 내년 5월부터 옮겨올 곳이다.

이들의 이주는 홍콩 정부가 중국 선전을 거쳐 광저우까지 연결하는 ‘광선강고속철도’를 2015년까지 짓기로 하면서 비롯됐다. 초이유엔 마을엔 비상 정거장과 수리장을 세우기로 한 탓이다.

5년 전 고속철 건설 계획을 확정한 홍콩 정부는 이 마을에 2년 안에 집을 비우라는 공고문을 붙이고 주민들의 자산을 동결했다. 150여가구 500여 주민은 1898년 이 지역이 영국 조차지로 넘겨진 이후 중국에서 건너온 이주민 후손들이었다. 이들은 토지소유권을 쥔 원주민들에게서 땅을 빌려 농사지으며 살고 있었고, 원주민 거주자는 없었다. 원주민들의 토지소유권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까지도 보장됐다.

이주민 후손인 초이유엔 마을 주민들은 2009년 정부에 대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마을을 피해 고속철 노선을 조정하거나, 기존 철도 노선에 따라 건설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1898년 영국에 할양된 센카이 지역에 옮겨온 이주민들의 사상 첫 시위였다. 주민들은 정부청사와 국회 앞으로 몰려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침묵시위도 하고, 3보1배도 했다. 구호를 외치고 거리행진을 하던 이전의 시위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결합했고,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으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보보 입 홍콩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간사는 “2005년 홍콩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 당시 한국 농민운동가들의 시위 방식을 받아들였다. 시민들의 반향이 컸고 홍콩의 저항문화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 운동을 계기로 홍콩 정부가 원주민들의 재산권은 중시하면서도 실제 거주해온 이주민들의 권리는 외면하는 ‘차별 정책’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결국 2011년 홍콩 정부는 초이유엔 마을 철거를 강행하면서도, 주민들에게 집 크기와 무관하게 가구당 60만홍콩달러(약 8300만원)를 보상했다. 정책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예전에 주던 보상금의 4배에 이르는 액수였다. 이주민의 3분의 1가량은 마을에서 차량으로 10분쯤 떨어진 ‘새 초이유엔 마을’에 함께 이주하기로 했다. 그때까진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거처에서 지내고 있다.

초이유엔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는 코춘헝(50·여)은 10일 새 주택단지 건설 현장을 소개하면서 “새 초이유엔 마을의 안정된 삶을 정부가 계속 보장할지는 의문이다. 인접한 원주민 마을과의 관계도 걱정된다. 하지만 함께 이주하는 주민들의 결속력은 훨씬 강해졌다. 이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콩/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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