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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강정마을 강부언 삼촌 / 권혁철

등록 2013-12-03 19:13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제주시 오라2동 161 제주교도소 수감번호 582. 강부언(72)씨의 주소다.

강씨는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고, 성품이 온순하여 아랫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는 친근한 ‘삼촌’이라고 말했다.(제주에선 친척뿐만 아니라 마을의 윗분들을 두루 삼촌으로 부른다.)

물이 풍부한 강정마을은 물이 귀한 제주에선 드물게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 ‘강정애긴 곤밥 주민 울곡 조팝 주민 안 운다’(강정아기는 쌀밥 주면 울고 조밥 주면 안 운다)는 제주 속담이 생길 정도로 강정마을은 예로부터 사는 형편이 넉넉했다. 강정마을 해안엔 1.2㎞에 이르는 구럼비라 불리는 너럭바위가 있었다. 구럼비는 풍요로운 강정의 상징이었다. 강씨는 어린 시절 구럼비 위에서 친구들과 대나무로 낚시를 하고 강정천에서 헤엄을 치고, 은어를 잡아먹었다.

칠십 평생을 없는 듯이 조용하게 살던 강씨의 삶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결정된 2007년 4월 이후 바뀌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릴 적 생각이 자주 나곤 합니다. 제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구럼비 바위가 (해군기지 공사로) 콘크리트로 덮인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합니다. 어릴 적 추억들이 자꾸만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고 가슴에 통증을 느낍니다.”(출간 예정인 <강정이야기> 정찬일 시인의 ‘강부언’ 인터뷰 중에서)

그는 해군기지 공사를 한다고 굴착기로 마구 파헤친 동네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앙불이 난다”고 말했다. “도지사든, 도의원이든, 해군이든 주민들을 아주 무시하고 막 밀어붙이는 거. 이게 내 땅이고, 우리들 땅인데, 그렇게 무시당하는 게 억울하지. 내가 한 70년을 살아온 땅인데, 생각을 해 봐요. 우리를 인간 취급을 안 하는데 어떻겠어.”(2011년 9월27일 <미디어충청> <참세상> 인터뷰)

그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막다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다. 강씨는 지난해 5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징역 4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 등으로 지난 10월8일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을 했기 때문에 법정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10월22일 오전 11시 제주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강정 주민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강부언 어르신을 석방하고 대신 우리들을 가둬달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대체복역’ 탄원서를 제출했다. “강부언 어르신은 젊어서부터 한쪽 눈을 실명한 시각장애인이고, 9년 전 위암으로 위벽절제수술까지 받았다. 우울증과 전립선염까지 겹쳐 엄중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부인 정동신씨는 뇌졸중으로 수족이 자유롭지 못하여 화장실 출입조차 어려운 상황에 치매 증세까지 있다. 강부언 어르신이 경제활동인 농사는 물론 홀로 지어야 하고 부인의 식사보조에 모든 가사를 돌봐야 한다.” 벌을 대신 받는 제도가 없지만 이웃인 강씨의 딱한 형편을 외면할 수 없어 ‘우리를 대신 가두고 강부언 어르신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했다.

강씨는 보석을 신청했지만 제주지방법원은 11월12일 “법률에서 정한 보석 허가 사유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보석을 기각했다. 겨울이 오자 아내는 교도소 안 남편을 걱정한다. 아내가 남편 강씨에게 구술한 편지다. “나 설거지하고 밥하고 빨래하다가 나 곁을 떠나니 좋아요? 그 안 밥맛 좋고 잘 지내시나요? 옷이 춥지 않아요? 내복 사야지요?” 현재 상황이면 강씨는 겨울이 끝난 내년 4월에야 부인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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