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서 절대공동체를 경험했던 광주 시민들은 그동안 다섯번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광주 정신’에 맞는 시장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정신을 살려 인권과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시장 후보는 누구일까? 사진은 내년 개관 예정으로 옛 전남도청 터에 짓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 건물. 전남일보 제공
[현장 쏙] 6·4 지방선거 앞둔 광주시민의 고민
호남은 야권의 ‘텃밭’이다. 광주시장 선거에서도 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 후보들이 뽑혔다. 정권교체를 위한 광주 시민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했지만, ‘예선이 곧 본선’인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답답함도 크다. 1980년 5월 절대공동체를 이뤘던 광주의 역사적 경험을 살려 시장을 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광주 정신’에 맞는 시장을 뽑는 것은 요원한 일인가?
호남은 야권의 ‘텃밭’이다. 광주시장 선거에서도 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 후보들이 뽑혔다. 정권교체를 위한 광주 시민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했지만, ‘예선이 곧 본선’인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답답함도 크다. 1980년 5월 절대공동체를 이뤘던 광주의 역사적 경험을 살려 시장을 뽑지 못했다는 것이다. ‘광주 정신’에 맞는 시장을 뽑는 것은 요원한 일인가?
“또다시 선택권이 박탈된 셈이지요.”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사는 박상현(51·자영업)씨는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소식을 들은 뒤 “야권 분열을 막았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이 지방선거는 또다시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광주시민 상당수는 박씨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의 탄생으로 “오랜만에 기대했던 진검 승부를 보지 못하게 됐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옛 민주당 쪽과 안철수 쪽 세력이 ‘한 지붕’ 아래에서 치르는 당내 경선이 곧 본선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번 지방선거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뿌리를 둔 야권 정당의 양자 구도를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야권 정당의) 정치 기득권이 유지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장 경선 후보는 재선을 노리는 강운태 시장과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이용섭 국회의원(광산을) 등 3명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이정재 광주시당위원장이 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고, 윤민호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위원장, 노동당 소속인 이병훈 노무사, 이병완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무소속) 등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 광주의 도시 정체성은? 광주시가 지난해 7월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한 뒤 정부의 재정보증 서류 조작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광주가 인권도시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를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인권도시가 아니라 ‘스포츠 러빙 시티’”라고 꼬집었다.
이는 스포츠 행사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면서 복지 예산이나 현안 사업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광주시는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총사업비 8171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4330억원(53%)을 시비로 조달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유니버시아드대회 준비에 들어가는 시비가 2616억원이다. 광주시가 인건비 등 각종 법정 경비를 빼고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한 해 2500억원가량임을 고려하면, 해마다 가용 예산의 50% 이상을 특정 대회 사업비로 투입하는 꼴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과연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시장선거때 민주 몰표줬지만
국제스포츠행사 유치에 골몰
재정 쏟아붓느라 복지는 뒷전 인권·평화 광주정신 담을 시장
이번도 두 야당 통합으로 흐릿
“시민 참여폭 넓혀 공천혁명을” 광주에서는 ‘광주 정신’이라는 말을 쓴다. 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 ‘절대공동체’를 이룬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는 “광주 정신은 억압·배제·소외의 최소화, 자유·민주·평화 그리고 인권의 최대화를 위한 저항 정신이다.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주체였다는 역사적 경험이 광주 정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말했다. ‘광주엔 허술한 식당에도 동양화 한 점은 걸려 있다’는 말에서 출발한 ‘예향 담론’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저항 담론에 밀려났다. 공동체라는 광주 정신의 고갱이는 5·18 이전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종범 조선대 교수(사학)는 “백제 때부터 패자를 끌어안는 포용의 정신이 스며 있는 곳이 광주다. 호남에서 태동한 향약 공동체 정신이 광주 정신과 맞닿는다. 이러한 정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 희생하는 의병의 절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민주·인권·평화라는 광주의 정체성은 인문학뿐 아니라 실학이나 새로운 과학 등 실용과 함께 녹아날 때 제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광주 사람들은 그동안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맞는 시장’을 뽑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동안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은 “역사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권 교체라는 여망 때문”에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이 때문에 때로는 “오히려 시민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시장을 선택한 적”도 있었다. 문순태 소설가는 “광주가 역사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도시였는데도 민주당의 볼모로 잡혀 광주 정신에 입각한 시장을 뽑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어떤 시장이 광주에 맞나? 그렇다고 광주 정신에 가장 들어맞는 시장을 어떤 특정한 유형으로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홍성담 화가는 ‘시민후보론’을 주장한다. 그는 “광주는 농촌경제 토대 위에 아직도 도시 공동체가 살아 있는 최후의 도시다. 1980년 국가폭력에 맞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 경험이 있는데도 우리는 광주의 정치적 위상을 항상 다운시켜서 선거한 셈이 됐다. 멋쟁이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데 민주당 때문에 버렸다. 자치 경험을 살려 이제라도 시민후보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무소속으로 출마한 시민단체 출신이나 진보 정당 후보들 역시 시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박구용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정당의 후신인 현재 여당과 민주당 계열의 현재 야당이 ‘적대적 공생’을 해온 측면이 있다. 시민들이 지역 기반이라는 틀을 바꿀 만큼의 주체로 서지 못했다. 선거 때만 되면 시민사회도 민주당이 꽂은 빨대에 빨려들었다. 지역에서 대안 세력을 자처하는 사람도, 진보 정당도 모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광주 정신에 맞는 시장의 조건은 무엇일까? 문순태 소설가는 “시민의 의식보다 조금 앞서가고, 시민과 함께 손잡고 가면서 광주 정신을 역사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꼭 행정에 능통한 관료 출신의 행정 달인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의 말과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한 마음을 가진 인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광주 지역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5명이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안철수 대표 쪽과 가까운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에 대한 비판이 많다. 국회의원의 오만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물론 “윤 후보 쪽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시민들에게 겸손하지 못한 자세”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한 시민은 “시민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의제나 정책을 내놓지 않고, 마치 과거 정치꾼들이 하는 선거 전략만 짜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광주에서 ‘광주다운 시장’을 갖기 힘들게 됐다는 얘기다.
시민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예선에서 시민의 후보 선택권을 넓혀주는 게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영태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야권의 예선전에 최대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 파수꾼 역할을 했던 광주에서만이라도 예선을 최대한 늦추고, 공천 혁명을 이룰 수 있도록 시민들의 참여 폭을 오픈프라이머리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광주 정신에 맞는 시민후보를 시장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지방선거 2~3년 전부터 시민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국제스포츠행사 유치에 골몰
재정 쏟아붓느라 복지는 뒷전 인권·평화 광주정신 담을 시장
이번도 두 야당 통합으로 흐릿
“시민 참여폭 넓혀 공천혁명을” 광주에서는 ‘광주 정신’이라는 말을 쓴다. 1980년 5월 국가폭력에 맞서 싸워 ‘절대공동체’를 이룬 역사적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는 “광주 정신은 억압·배제·소외의 최소화, 자유·민주·평화 그리고 인권의 최대화를 위한 저항 정신이다.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주체였다는 역사적 경험이 광주 정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말했다. ‘광주엔 허술한 식당에도 동양화 한 점은 걸려 있다’는 말에서 출발한 ‘예향 담론’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저항 담론에 밀려났다. 공동체라는 광주 정신의 고갱이는 5·18 이전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종범 조선대 교수(사학)는 “백제 때부터 패자를 끌어안는 포용의 정신이 스며 있는 곳이 광주다. 호남에서 태동한 향약 공동체 정신이 광주 정신과 맞닿는다. 이러한 정신은 나라가 어려울 때 희생하는 의병의 절의 정신으로 이어졌다. 민주·인권·평화라는 광주의 정체성은 인문학뿐 아니라 실학이나 새로운 과학 등 실용과 함께 녹아날 때 제대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광주 사람들은 그동안 ‘광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에 맞는 시장’을 뽑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그동안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은 “역사 속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권 교체라는 여망 때문”에 ‘전략적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이 때문에 때로는 “오히려 시민 정신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시장을 선택한 적”도 있었다. 문순태 소설가는 “광주가 역사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도시였는데도 민주당의 볼모로 잡혀 광주 정신에 입각한 시장을 뽑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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