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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로…청와대로…유족들 20여시간 ‘눈물의 행진’

등록 2014-05-09 20:19수정 2014-05-09 23:43

항의 시간대별 상황
8일밤 10시 KBS 항의방문 문전박대 당한뒤 4시간 대치
결국 청와대로 발길 돌렸지만 이번엔 경찰 차벽에 막혀
9일 새벽 4시부터 길바닥 주저앉아 ‘박대통령 면담’ 요구
9시에 정무수석만 만나…오후 3시41분 KBS 사장 사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자식의 영정을 품에 안고 20시간 동안 ‘눈물의 행진’을 했다.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한국방송>(KBS)으로, 다시 청와대 앞으로 옮겨 다니며, 1박2일을 거리에서 보냈다. 이들의 요구는 소박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한국방송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에 대해, 한국방송 사장이 사과하고 김 국장을 파면하라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청와대 앞에서 12시간 넘게 ‘연좌농성’을 벌인 끝에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저녁 8시 30분께 아이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경기도 아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한국방송 사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저녁 8시 30분께 아이들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경기도 아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정부 합동분향소에서 한국방송 사옥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가족들의 분노는 지난 8일 오후 3시49분께 터져나왔다. 한국방송 임창건 보도본부장 등 방송사 고위 임원들이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게 도화선이 됐다. 이 방송사 김 국장이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을 전해 들은 유가족들은 분개했다.

유가족들은 한국방송 일부 임원을 붙들고 사장의 사과와 김 국장 파면을 요구했다. 이어 격앙된 유가족 150여명은 밤 9시7분께 분향소에 놓인 자식들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분노와 눈물의 행진’을 시작했다.

밤 10시10분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사옥에 도착한 유족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경찰과 4시간가량 대치하던 유가족들은 결국 청와대로 발길을 돌렸다. 대통령에게 직접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해서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저녁 11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사옥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영정을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저녁 11시께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 사옥 앞에서 경찰에 가로막히자 영정을 들어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하지만 이들을 맞이한 것은 경찰 차벽이었다. 김병권 유가족대책위원장은 “우리는 시위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울부짖으며 행진을 시도했지만 청와대는 멀기만 했다. 이들은 9일 새벽 3시50분께부터 청와대 길목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찰은 13개 중대 900여명을 동원했고, 일부 유족은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밤새 추위에 떨며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유가족 대표단이 청와대로 들어간 것은 오전 9시가 돼서였다. 하지만 2시간 뒤 대표단이 들고나온 소식은 “정무수석이 박 대통령에게 면담 요구 의사를 전달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9일 아침 7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앉아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9일 아침 7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앉아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래도 유가족들은 흥분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주장도 하지 않았다. 마치 ‘순수한 유가족’이 아닌 이들로 비칠까 경계하는 듯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순수 유가족분들의 요청을 듣는 일이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민 대변인의 발언을 전해 들은 유가족 고영환(46)씨는 “또 이간질이다. 우린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사죄받으러 온 건데도 기다리란다. 바다에서도 기다리라고만 하더니…”라며 분노를 삼켰다.

아들의 영정을 안은 채 나란히 앉아 있던 부부 가운데 남편이 말했다. “대통령 나오겠죠. 나올 거예요. 국민의 대통령이잖아요. 국민이 질문을 했으면 답하겠죠.” 아내가 “우리가 죄인은 아니잖아요”라고 하자 남편이 말했다. “죄인이지, 아이를 이렇게 만든 우리가 죄인이지.”

유가족들의 애처로운 호소와 분노를 시민들만은 외면하지 않았다. 물통에 얼음물을 채워 유가족들에게 전했고, 일부 시민들은 출근길에 달걀과 주먹밥, 닭죽 등을 건네기도 했다. 서촌 주민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이분들은 정말 기다림에 익숙해진 분들인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b>청와대로 간 유족들</b>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9일 낮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자 경찰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청와대로 간 유족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9일 낮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자 경찰이 이들을 에워싸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소식을 들은 세월호 생존자 부모 50여명도 달려왔다. 숨진 자식 친구의 부모를 만난 유가족들은 ‘눈물의 박수’를 보내며 이들을 맞이했다. 단원고 2학년 1반 장혜진(17)양의 아빠라고 소개한 50대 남성은 현재 심리치료를 받는 중인 생존 학생 대표 신영진군과 전화 연결을 했다. 신군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지만 다 같이 돌아오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들의 슬픔을 제가 다 모르지만, 저도 친구를 잃어서 지금도 너무 슬프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억울한 친구들의 마음을 잘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휴대전화에 연결된 확성기를 통해 신군의 말을 듣던 유가족들은 신군에게 들리도록 큰 목소리로 “네가 왜 죄송하냐.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외치고는 목놓아 울었다.

긴 기다림 끝에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이 유가족 앞에 나타나 머리를 조아렸다. 길 사장은 이날 오후 3시25분께 현장을 찾아 “케이비에스로 인해 상처받은 유족 여러분께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끝내 이들을 외면했다.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이 방송사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 파문과 관련해 9일 오후 3시 40분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길환영 한국방송(KBS) 사장이 이 방송사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 파문과 관련해 9일 오후 3시 40분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제 다들 지친다. 우리가 여기 와서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하러 온 건데 이 정도면 그냥 (안산으로) 돌아가자. 일부 미진하지만 우리가 싸우러 온 것은 아니니까”라며 애써 위안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3시50분께 청와대에서 발길을 돌렸다. 20여시간의 긴 행진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기자, 김지훈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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