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하 기자
현장에서
ㅌ건설 대표 이아무개씨는 지난 16일 고소장 접수 증명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근 이씨가 검찰에 고소한 피고소인 2명 중 1명이 엉뚱한 사람으로 둔갑돼 있었기 때문이다. 피고소인 1명은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으로 비판을 받았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이다. 이씨는 수천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대주그룹 계열사인 ㅈ건설 황아무개(51) 전 대표와 이를 지시한 허 전 회장을 고소했다. 그런데 고소장 접수 증명서에는 황씨 대신 ㅎ(58)씨가 피고소인으로 적혀 있었다.
검찰은 “단순한 실수”라고 해명했다. 광주지검 쪽은 “ㅎ씨 이름이 허 전 회장이 관련된 다른 사건들 고소장에도 자주 등장했다. 담당 직원이 고소인이 ㅎ씨의 이름을 황씨로 착각한 것으로 판단해 고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의 설명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검찰이 과거 허 전 회장에게 베풀었던 ‘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광주지검은 2008년 9월 508억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허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원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벌금을 선고유예 해달라고 요청해 비난을 샀다. 재판을 받고 있던 허 전 회장은 2010년 1월 항소심 선고 직후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에서 호화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4년 만에 허 전 회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21일 귀국해 노역장에 유치된 허 전 회장의 황제노역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검찰은 나흘 만에 노역형 집행을 중단하고 국내외 재산도피 의혹 등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석 달이 지난 지금도 검찰은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횡령·배임 혐의나 주식을 차명으로 신탁하면서 증여세를 포탈했는지 등의 의혹에 대해 진위 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세 차례에 걸쳐 벌금을 낸 허 전 회장의 현재 미납 벌금은 74억5000만원이다. 일각에선 ‘허재호 전 회장 사건 수사는 이제 물 건너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초 광주지검 고위 관계자가 “허 전 회장 쪽이 벌금을 내면 끝나는 것 아니냐”고 툭 던진 말대로 수사가 유야무야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연재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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