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개인, 군대문화, 구조적 문제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2·3번 순 아니겠느냐.”(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
지난 6월25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육군 22사단 총기사건) 가운데 오간 문답이다. 당시 김관진 장관은 22사단 총기사건의 가장 큰 원인으로 가해자 임아무개 병장을 지목했다.
정말 임 병장 같은 관심병사가 문제일까? 임 병장의 부모는 “아들이 9월이면 전역을 하는데 누가 내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냐. 멀쩡하던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임 병장이 군 입대 전에 멀쩡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다만 20여년 전 군 복무 시절을 돌이켜보면, 입대 전 학교나 직장을 잘 다녔던 사람들이 군대에선 ‘고문관’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여럿 봤다.
일반전초(GOP)에서 크고 작은 총기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들 아는 것처럼 장병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경계와 작업에 투입되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최전방이란 고립감, 대인관계 스트레스 때문이다. 22사단 총기사고 뒤 군 당국이 재발 방지책을 고민하지만, 현실적으로 내놓을 대책은 뻔하다. 지휘관이 관심병사를 잘 돌보고 부대관리를 잘하는 수준이다. 당장 사고를 막기 위해선 관심병사를 잘 돌봐야겠지만, 지오피 근무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이런 대책만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병사들이 왜 열악한 지오피 근무를 해야 할까. 큰 틀에서 보면 선형방어(linear defense) 전략 때문이다. 선형방어전략은 한반도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휴전선을 따라 10여개 사단병력이 늘어서는 것이다. 지오피는 선형방어의 맨 앞에 있다.
지오피의 군사적 구실은 대략 세가지다. 북한군 이상 동향을 감시하는 조기경보 기능, 북한군 남침 시 1차 방어, 북한군 국지도발과 간첩침투 대응 등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오피 등의 조기경보 기능은 쓸모가 적어졌다. 지오피 근무 병사의 육안 관측과 망원경 등 감시장비로 북한군 남침 조짐을 얼마나 빨리 알 수 있을까. 한미연합군은 군사위성, 정찰기, 통신감청 등으로 북한군의 전면 남침 조짐을 2~3일 전에 알아낼 수 있다.
북한군 남침 시 1차 방어 기능도 제한적이다. 북한군은 우리 군의 지오피 위치를 알고 있고, 전쟁이 시작되면 이곳을 집중포격할 것이다. 개전 초기 지오피 병력은 대부분 전사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선 지오피는 예비사단이 전열을 갖춰 투입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버는 구실을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북한 무장간첩 침투가 빈번하지 않다. 북한은 경제난이 심해진 90년대 이후 방사포, 미사일 등 비대칭 전력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북한군이 휴전선 근처 귀순벨을 누르고 도주한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휴전선을 따라 늘어선 경계근무의 실효성도 따져볼 문제다. 우리는 휴전선을 국군 장병들이 불철주야 24시간 철통경계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홍보 영상처럼 병사들이 물샐틈없이 경계근무를 하긴 어렵다.
지오피 총기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장기적으로 휴전선에 감시관측장비를 갖추고 휴전선 경계부대를 뒤로 배치하고 기동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내가 볼 때 문제는 관심병사가 아니라, 수십년째 휴전선에 한줄로 병사를 줄세우는 선형방어 전략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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