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들’ 중 누가 웃을까.
전남 순천·곡성 보궐선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55) 새누리당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서갑원(52)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 후보가 ‘지역발전을 위해 예산 폭탄을 퍼붓겠다.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물꼬를 트겠다’고 선공을 하자, 서 후보는 ‘국가 예산이 여당의 쌈짓돈이냐. 정작 힘있을 때는 무엇을 했느냐’며 역공에 나섰다.
순천·곡성 선거구는 그동안 선거에서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호남을 텃밭으로 삼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출마했는데도 2년 전 총선에선 김선동 통합진보당 후보가, 지난 6·4 지방선거에선 무소속 조충훈 후보가 순천시장에 당선됐다.
민정당 당직자 공채 1기인 이 후보는 애초 박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으면서 신임을 얻어 18대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다.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불모지나 다름없는 광주서을에서 39.7%를 득표했다.
서 후보는 1990년대 초부터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국회의원 보좌관, 대선 후보 의전팀장 등을 맡았고, 집권 뒤에는 청와대 의전·정무1 비서관을 지냈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0년 ‘박연차 게이트’에 얽혀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이 때문에 ‘왕의 남자들’의 이번 승부는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여야 후보의 ‘귀환 전쟁’일 뿐 아니라 ‘박근혜 세력 대 노무현 세력’의 대리전으로도 비쳐지고 있다.
이 후보는 순천대에 의대를 유치하고, 순천박람회장을 국가정원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 후보는 “야권연대로 뽑은 머슴이 말썽을 일으킨만큼 주인이 잘못한 머슴을 갈아치워야 한다. 인물을 보고 뽑자”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김아무개(47)씨는 “경기가 바닥인데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니 귀가 솔깃하다. 공약을 지키는지 1년 반만 맡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 후보는 만만치 않은 기류에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서 후보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도깨비 방망이 놀음’에 맞서 지역의 자존심을 지키겠다. 부도 공공건설임대주택 임차인 보호 특별법을 만드는 등 줄곧 서민 편에 섰던 노력을 유권자들이 평가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시장 상인 황아무개(66)씨는 “박 대통령이 뽑아만 주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약속을 지켰나.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한테 표를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론조사에서는 서 후보가 10%포인트 안팎의 차이로 앞서고 있다. 이번 선거에는 6·4 지방선거 전남지사 후보로 나서 12.4%를 얻은 이성수(45) 통합진보당 후보, 전남도교육감 선거에서 14.5%를 얻은 김동철(60) 무소속 후보, 판사 출신인 구희승(51) 무소속 후보도 뛰고 있다.
순천/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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