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일까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자신보다 확진 받은 이웃 더 걱정
“블루베리 익었는데 따주지도 못해”
자신보다 확진 받은 이웃 더 걱정
“블루베리 익었는데 따주지도 못해”
“텔레비전을 보면 아직도 불안불안해.”
15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 여파로 격리된 전남 보성의 한 마을. 마을 방송을 통해 “어제 주민들의 검체를 조사한 결과 모두 음성이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장 ㄱ(76)씨는 공무원들이 하는 방송을 듣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엿새 전 마을에서 300여m 떨어진 들머리에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는 노란띠가 설치된 뒤 안절부절 못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주민의 사랑방이던 마을회관마저 문이 잠겨 고샅에는 낮에도 정적이 감돈다.
이 마을에 격리된 주민은 17가구 32명이다. 70~80대가 가장 많고, 학생도 6명이 포함됐다. 이 마을의 초등학생 2명, 중학생 1명, 고등학생 2명, 대학생 1명은 학교의 휴업이 풀려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다.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이 마을 ㄴ(64)씨가 지난 7일 전남대병원으로 격리되면서 주민들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ㄴ씨는 8일 음성 판정을 받더니, 10일엔 양성으로 메르스 감염이 확진됐다. 곧바로 밀접 접촉한 가족과 주민이 사는 마을의 통행이 제한됐다. 이 마을은 추가 발병자가 없으면 7일부터 잠복기간 14일이 경과한 21일에야 격리가 풀리게 된다.
갇힌 주민들은 자신들의 처지보다 이웃인 확진자 ㄴ씨의 상태를 걱정했다. “좋은 이웃인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 ㄴ씨가 밭 1천평에 가꾼 블루베리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데 거들어 딸 수가 없으니 걱정스럽다.”
주민들은 격리 전 모내기는 마쳤지만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콩밭과 깨밭의 풀을 매야 하는데도 손을 쓰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할머니 3명은 바깥 출입을 말라는 당부 때문에 비좁은 집안에서 지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장 ㄱ씨는 “이들 중 86살 할머니는 운동을 제대로 못해 다리가 붓는 등 힘들어 하신다”고 전했다.
전북 순창의 한 마을은 지난 5일부터 격리돼 주민들이 11일째 갇혀 있다. 이 마을 73가구 주민 136명은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해제일인 19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장 ㄷ(58)씨는 “축협에서 고기를 보내는 등 지원이 이어져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갇혀 있기 때문에 답답하고, 지역의 농산물이 팔리지 않아 우울하다”고 말했다.
광주 전주/안관옥 박임근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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