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메르스,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메르스, 그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5년 6월17일 42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 김정옥(가명)씨가 서울의료원(서울 중랑구 신내동) 음압병실에서 사망한 뒤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간호사가 빈 침상을 소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3년 만에 찾아온 메르스가 큰 피해 없이 진화되고 있다. 확진 환자는 9월17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새 환자가 나오지 않으면 10월16일께 메르스 종식 선언(세계보건기구 기준 마지막 환자 완치 28일 뒤)이 예상된다. 2018년 메르스가 종식되는 이튿날 종식되지 않은 고통이 법정에 선다. 3년 전 메르스로 사망한 한 여성의 죽음을 둘러싸고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지난 3년 동안 메르스 사망·확진·격리자들이 대한민국과 의료기관들을 상대로 제기한 13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익소송)이 ‘메르스 종식 국가’의 무관심 속에서 진행돼 왔다. 42번째 확진자이면서 20번째 사망자인 이 여성은 당시 ‘메르스 행정과 정치’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입원~발병~확진~사망 과정엔 정부·병원의 비밀주의와 방치된 감염 관리, 정치적 누락과 은폐가 집약돼 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감염병으로 재앙에 가까운 피해가 닥쳤을 때 ‘국가와 의료기관의 책임과 한계’를 묻는 법적 싸움들을 전한다.
2015년 6월10일 서울의료원(중랑구 신내동) 음압병동의 폐회로텔레비전이 환자들을 비추고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서 얼굴을 산소호흡기로 덮은 김정옥(가명)씨가 위중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3년 전 사태 때 고통은 ‘현재 진행’
경실련 공익소송 13건 절반만 선고
선고 재판의 절반 이상이 원고 패소
재판부마다 같은 상황 다른 판결도 ‘42번째 확진·20번째 사망’ 김정옥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입원
병원 지시대로 따르다 감염·사망
국가·병원, 발병 사실 알리지 않고
두 병동 환자 섞고 출입·면회 방치 두 사람의 병실엔 30번째 환자도 있었다. 그는 5월22일부터 28일까지 같은 병실을 썼다. 평택성모병원(5월1~4일)에 입원했던 16번째 환자는 22일 고열로 대청병원에 내원해 두 사람의 병실로 배정됐다. 1심(2017년 1월19일)에서 패소한 30번째 환자는 항소심(지난 2월9일)에서 승소했다. 법원이 메르스 사태의 국가 책임을 인정(16번째 환자 역학조사 부실 등 1천만원 배상)한 첫 판결이었다. 국가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급심의 서로 다른 판결은 대법원에서 판가름 나게 됐다. 1심에서 원고가 유일하게 이긴 사건은 병원을 상대로 한 유일한 승소 판결이기도 하다. 150번째 확진자의 메르스 양성 반응(6월7일)을 건국대병원이 일주일 늦게 보건소에 신고(6월13일)한 사실이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병원에 300만원을 선고(지난 2월23일. 병원 항소)했으나 대한민국의 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원고 패소(1심 패소 뒤 항소심 승소 사건 포함) 판결엔 논리적 공통점이 있었다. ① 다른 병원에서 메르스와 접촉한 환자가 병원을 옮겨 내원했다. ② 그가 메르스 확진을 받기 전일 경우 옮겨간 병원과 국가는 그의 접촉·이동 경로와 감염 가능성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3년 전 김정옥의 확진과 죽음은 ‘슈퍼전파자’라 불리며 사태의 책임을 뒤집어쓴 14·16번째 환자들 뒤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존재는 인위적으로 가려졌다. 통제선을 뚫은 메르스가 폭주하던 당시 그의 감염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정부의 의도에 따라 숨겨졌다. 그는 박근혜 정부 ‘메르스 정치’의 희생자였다. 원고 패소 사건들에서 확인되는 두 특징과 ‘김정옥 사건’ 사이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었다. 시키는 대로 따르다 감염 ① 김정옥은 메르스의 최초이자 최대 진원지에서 감염됐다. 김정옥은 국가와 소속 의료진 모두 메르스 발생 사실을 아는 병원 안에서 감염됐다. 2015년 5월19일. 김정옥이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8109호에 입원했다. 평택성모병원은 3개월 전 개원한 2차 의료기관이었다. 박경란이 “깨끗한 신설 병원”으로 엄마를 데려와 입원시켰다. 5월20일. 15일부터 17일까지 평택성모병원 8104호에 입원했던 환자가 ‘국내 최초 메르스 감염’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평택성모병원에 역학조사관들을 보내 ‘밀접 접촉’(당시 기준은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한 의료진 등 29명을 격리조처했다. 첫 확진자가 병실 밖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한 사실을 시시티브이로 확인했으나 밀접 접촉 범위를 입원 병실로만 제한했다. 협소한 기준은 메르스를 잡기보다 놓치는 그물이 됐다. ② 국가와 병원은 김정옥과 환자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대신 두 병동의 환자들을 뒤섞었다. 5월20일. 병원이 8층을 폐쇄하면서 환자들(48명 중 29명)을 7층으로 내려보냈다. 원하는 사람은 퇴원(19명)시켰다. 환자들에겐 내부 공사 등을 이유로 댔다. 박경란이 “왜 옮기냐”고 물었을 땐 “잘 모르겠다”는 간호사의 답변이 돌아왔다. 오후 5시17분 김정옥도 7212호로 병실을 이동했다. 29일부터 확진 판정을 받는 11번째, 12번째, 14번째, 27번째 환자가 8층에서 내려가 37번째, 39번째, 40번째, 43번째, 44번째 환자 등과 7층에서 만났다. 누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 모르는 채로 그들은 한데 뭉쳐졌다. ③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숨긴 것은 김정옥과 환자들이 아니라 국가와 병원이었다. 국가와 평택성모병원은 입원 환자들에게 그들이 메르스의 진원지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의료진들은 마스크를 쓰면서도 환자들에겐 착용을 권하지 않았다. 자신의 건강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의료기관과 보건 당국으로부터 환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 기회를 빼앗겼다. 알았다면 입원하지 않았을 피해자들이 정부와 의료기관이 알리지 않았으므로 속출했다. 52번째·53번째 환자는 5월23일·26일부터 5월28일까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 그들은 병원의 메르스 발생을 모르고 입원했다가 감염됐다. ‘비밀주의’가 부른 두 사람의 감염 사실이 발표된 6월7일에야 메르스 환자가 나오거나 거쳐 간 24개 병원 이름이 공개(평택성모병원은 6월5일)됐다. 평택성모병원에서만 37명의 확진자가 나온 뒤였다. 5월21일. 전날 병실 이동 과정에서 퇴원(13일 폐렴으로 8110호 입원)했던 환자가 증상 악화로 하루 만에 재입원(7106호)해 김정옥 등과 한 층에서 생활했다. 그는 5월25일 평택굿모닝병원과 5월27일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하며 ‘슈퍼전파자’(5월30일 14번째 확진)란 이름을 얻었다. ④ 김정옥은 병원이 시키는 대로 따르다 감염됐다. 5월25일. 김정옥이 발열(사망 뒤 역학조사서에 적힌 메르스 발병 시점)했다. 체온이 39도까지 올라갔다. 전날 엄마와 통화하며 박경란은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난다”는 말을 들었다. 김정옥은 8층에 있을 때 첫 확진자와 접촉한 11번째·29번째 환자(2차 감염자)와 같은 병실을 썼다. 5월26일. 병원이 김정옥의 증상을 폐렴으로 진단했다. ‘병원 획득 폐렴’으로 진료기록에 기재됐다. 첫 확진자와 동일 병실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폐렴은 메르스 증상으로 의심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폐렴약과 항생제, 기침약 등을 처방했다. 바이러스 감염엔 소용없는 약들이었다. 5월27일까지 김정옥의 증상을 두고 외부에 의뢰한 검사들도 메르스와는 무관했다. 폐렴은 다수의 메르스 확진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된 증상이었다. ‘병원 내 감염 관리가 안 돼 얻은 폐렴’이 거듭 확인되고 있었지만 병원은 메르스와 연관지어 판단하지 않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이 잇따르고 있을 때였다. 메르스 노출 의료기관을 방문한 폐렴 환자들을 추적하는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는 6월9일에야 시작됐다. ⑤ 국가와 병원은 환자들의 이동·접촉 경로를 파악하는 대신 휴원 당일까지 면회·출입·외출을 방치했다. 5월28일. 병원의 메르스 발생 사실을 몰랐던 김정옥과 박경란이 병원 밖으로 나와 외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환자들의 동선은 관리되거나 통제되지 않았다. 김정옥을 면회한 지인도 며칠 뒤 박경란으로부터 ‘평택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질병관리본부에 스스로 연락했다. 엄마의 기침이 심해지자 박경란이 간호사에게 “메르스 아니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폐렴”이라고 답했다. 이날 밀접 접촉 범위 밖에 있던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되는 첫 사례(6번째 환자. 1번째 환자 옆 병실 입원)가 나왔다. 보건 당국이 밀접 접촉 범위(발열 판단 기준 38도→37.5도 등)를 넓혔다. 병원 내 메르스 발생조차 모르고 있던 김정옥이 갑자기 메르스 의심 환자가 됐다. 그와 폐렴 환자들이 메르스 검사를 받았다. 5월29일. 박경란이 엄마의 옷을 챙겨 병원 로비로 들어섰을 때 마스크를 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들을 봤다. 메르스를 직감한 박경란이 소리를 지르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엄마를 국가지정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이때도 병실 출입은 통제받지 않았다. 밤 11시2분 김정옥이 서울의료원으로 보내졌다. 평택성모병원은 휴원했다. 이송 직후 질본은 김정옥의 메르스 감염을 확진(밤 11시30분)했다. 질본 센터장과 현장점검반 역학조사팀장 등이 참석한 심야회의(평택성모병원)에서 김정옥은 ‘최초의 3차 감염자’(1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된 11번째 환자와 같은 병실 사용)로 보고됐다.
2015년 6월17일 당시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이 20번째 메르스 사망자(42번째 확진 환자) 발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티브이 화면 갈무리
‘세계 최초 3차 감염’ 결론 얻고도
문형표, ‘사회 혼란 우려’ 공개 보류
위독 직면해서야 확진일 속여 발표
14번째였으나 결국 42번째 확진자 올해 종식 예상일 다음날 1심 선고
대한민국과 병원 ‘책임 없음’ 주장
국가는 “당시 기준으로 최선 다해”
병원은 “국가가 시키는 대로” 입장
딸 “뼈 부러져도 병원 무서워 못 가” 6월6일. 확진 환자도 아닌 사람이 느닷없이 사망했을 때 닥칠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앞두고서야 정부는 김정옥의 존재를 밝혔다. 아침 7시40분 김정옥이 확진자 명단에 포함·발표됐다. ‘세계 최초 3차 감염자’란 사실과 감염 경로는 빠졌다. 확진일자도 5월29일이 아닌 6월5일로 명시됐다. ‘실제 확진 날짜가 알려지면 언론 대응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메르스대책본부는 판단(기획총괄반장의 감사원 진술)했다. 본래 14번째 확진자였어야 할 김정옥은 그렇게 42번째 환자가 됐다. 자가격리 중이던 박경란이 질본에 수차례 전화해 엄마의 확진 사실을 확인한 날은 6월7일이었다. ⑧ 김정옥은 죽어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6월17일. 김정옥이 새벽 5시께 숨을 멈췄다. 20번째 사망자로 분류됐다. 직접 사인은 패혈증성 쇼크, 중간 선행사인은 메르스 폐렴, 선행사인은 메르스 감염이었다. 확진 뒤 사망까지의 과정 설명 없이 사망 사실만 간략하게 발표됐다. “42번째 환자에게 기저질환으로 기관지확장증과 고혈압이 있었다”는 정보가 추가됐다. 그의 죽음이 기저질환과 연관돼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7월1일. 평택성모병원이 재개원했다. 7월28일. 황교안 당시 총리가 메르스의 ‘사실상 종식’을 선언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를 살리라는 독려가 뒤따랐다. 12월23일. 정부가 메르스 종식을 공식 선언했다. 사망자(38명)·확진자(186명)·격리자(1만6693명) 통계가 한 사람에게 닥친 재앙의 크기를 설명해주진 않았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왼쪽부터)과 신현호 변호사 등이 2015년 7월9일 오후‘메르스 사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3년 만에 메르스가 발생한 지난달 13일 인천 중구 운서동 대한항공 정비고에서 항공기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3년 만에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달 9일 환자가 격리 치료 중인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감염격리병동을 방문한 뒤 병원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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