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아침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 공사장 출입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천주교 사제와 주민들을 경찰이 해산시키고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해군기지 완공 앞둔 강정
해군기지 완공 앞둔 강정
▶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제주 해군기지가 곧 완공될 예정입니다. 마침 올해는 정부가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 지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왔던 강정마을 사람들은 요즘 불안합니다. 아름답고 한적했던 시골마을이 복잡한 기지촌으로 변해버리진 않을까 하는 불안입니다. 강정마을을 다시 찾았습니다. 다 지어져가는 해군기지와 부서진 구럼비바위의 모습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흘러온 물은 제주 남쪽 끝으로 내려와 강정천을 만들었다. 용암이 검게 굳어 돌이 된 산바위들을 지나 해안가 강정마을 어귀까지 찾아온 강물은 굽이굽이 마을을 돌며 놀다 바닷가의 구럼비바위와 악수를 하고, 바로 옆의 멧부리바위와 얼굴을 부빈 뒤 저 멀리 범섬을 품은 드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맑은 강정천에는 봄마다 은어가 뛰어놀았다. 은어는 1급수에서만 산다. 강정의 주민들은 수천년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살아왔고 자연도 그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지난 6일 오전 11시 강정천은 찬송가가 함께했다. 강정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주 해군기지(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공사장 정문이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수년째 매일같이 항의시위를 한다. 형식은 천주교 미사다. 2011년 9월 구럼비바위에 해군기지 공사장 담벼락이 설치됐을 때부터 시작했다. 6일 30여명의 주민과 학생들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함성을 질렀다. “구럼비야 사랑해!” 허연 수염을 턱으로부터 길게 늘어뜨린 문정현(75) 신부가 지팡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정문 앞에 섰다. 공사 차량들의 통행이 일시적으로 막혔다.
떠날 수 없는 문정현 신부
수년간 우리 사회에 각종 논란을 일으켰던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98%의 공정률을 기록해 이르면 이달 말 준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온 제주 강정마을은 고민에 빠졌다.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이제 다 끝난 것 아닌가. 지난 수년간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일까. 앞으로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제주의 평범한 마을이던 강정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비상식적인 소란스러움에 빠뜨린 상징 같은 공간이었다. 2007년 4월 국방부는 제주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선택했다. 당시 마을회장(윤태정)은 안건 공고도 없이 임시총회를 열었고 1900여명의 주민 중 87명만 참석한 채 해군기지 유치 건을 통과시켰다. 국방부도 두 달 뒤 강정마을 인근을 제주해군기지 지역으로 확정 발표했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국책사업이었지만 입지 타당성 조사도 생략했다. 주민들은 뒤늦게 이 소식을 들었다. 윤태정씨의 마을회장 자격을 박탈시킨 뒤 마을 총투표를 다시 했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결론(투표권 보유자 1000여명 중 725명이 투표에 참가해 680명이 반대)을 내렸지만 국방부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2012년 7월 대법원은 주민들이 제기한 ‘해군기지 건설 승인처분 무효 확인소송’을 기각했다. 환경영향평가가 반영되지 않은 기본계획은 무효지만 국방부가 보완한 변경·승인 계획은 유효하다는 판단이었다.
공사 시작과 함께 주민들은 전쟁 같은 싸움을 벌였다. 몸으로 막고, 촛불을 들고 공사차량들에 맞섰다. 그러나 2012년 3월7일 주민들이 마을의 혼처럼 여겼던 구럼비바위를 해군은 끝내 폭파시켰다. 지난달까지 경찰에 697명이 연행됐고, 601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56명이 구속됐고 주민들에게는 3억여원에 가까운 벌금이 개별적으로 부과됐다. 강정마을회는 마을회관 건물을 매각해 벌금을 납부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이제 마을회관에서 주민을 모으기 위해 울리던 비상 사이렌은 멈췄다. 주민 대다수는 먹고사는 일에 바쁘다. 수년을 싸웠지만 국가는 꿈쩍도 안 했다. 그러는 동안 해군은 어느덧 바다를 메웠고, 방파제를 지었고, 군 관사 건물들을 지었다. 지난달 22일 해군작전사령부 제7기동전단이 기지로 이전해 왔다. 이제 주민들에게 이전과 같은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버거워 보인다.
사이렌 대신 남은 건 찬송가와 노신부의 외침뿐이다. 몇몇 주민들만의 소극적인 저항이 이를 따른다. 6일 낮 12시 문정현 신부가 허리를 숙여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며 곡소리를 내듯 소리를 질렀다. “강정에 평화!” 흙더미와 각종 공사 자재를 실은 육중한 몸집의 트럭들은 그 옆을 무심히 지났다. 성체(신성화된 빵)를 나누어 먹는 행사로 미사는 곧 끝났다. 가끔 미사를 제지하던 경찰에 부딪혀 땅에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던 그 성체다.
“나는 못 떠나. 해군이 거짓말을 했잖아. 기지를 다 지어버리면 그 거짓말했던 게 사라지나?” 해군기지가 다 지어져도 강정마을에서 계속 싸움을 이어갈 것인지 묻자 문정현 신부가 화를 내듯 말했다. 주민들은 해군과 정부가 함께 거짓말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국방부는 주민 극소수의 동의를 ‘주민 의견 수렴’으로 둔갑시켰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됐던 강정 앞바다도 국책사업 앞에서 너무나 쉽게 지정해제됐다. 해상오염을 막겠다며 설치한 오탁수방지막은 수시로 훼손된 채 공사가 강행됐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은 이름뿐이고 실은 해군기지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 아닌지 여전히 논란이다. 군 관사로 쓰일 아파트가 역시 주민 동의 없이 강정마을 내 9407㎡ 터에 지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어도 방어’를 해군기지 구축의 이유로 설명하지만 이어도는 독도 같은 섬이 아니라 암초다. 국제법상 암초는 영토가 될 수 없고 암초 위에 세운 인공시설물인 해양과학기지는 되레 국제분쟁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날 미사가 끝난 뒤 기지 공사차량들이 쏟아내는 흙먼지 때문에 주민과 해군 사이 실랑이가 붙었다. 공사차량들이 마을 초입 도로를 오가며 흙먼지를 뿌려댄 탓에 도로는 진흙탕이 되었다. 기관지 문제로 병원을 찾는 주민들이 나타나자 주민들은 기지 공사차량들에 민감하다. 공사장 안에서 물청소를 받지 않고 흙으로 범벅이 된 채 나오는 차량들 앞으로 주민들은 뛰어들어 사진을 찍고 통행을 막았다. 경찰이 서귀포시 녹색환경과에 전화를 걸고 공무원이 나와 해군 쪽에 차량 세정을 좀더 철저히 하도록 조처한 뒤에야 소란이 잦아들었다.
공사장 정문 앞을 지키고 섰던 사업단 관계자는 분이 안 풀려 주민들에게 욕을 해댔다. 좀 차분해진 뒤 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군대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 빨갱이예요. 저 사람들은, 문정현이라는 저 사람, 맨날 와서 저래요. 왜 공사차량 통행을 방해하냐고요. 그냥 신고만 하면 될 것을. 저 사람들은 주민도 아니에요. 외부에서 갈 데 없어서 온 사람들….” 2012년 해군제주방어사령부 참모장 홍아무개 대령은 강동균 전 강정마을 회장에게 “북한 김정은 위해 일해라”라고 막말을 했다가 사과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길바닥에서 막말을 듣고 산다.
56명 구속되고 벌금 3억여원
구럼비바위 끝내 폭파된 뒤
해군기지 준공 앞두고 있고
주민들은 먹고살기 바쁘지만
공사장 앞 미사는 계속된다 “마을이 기지촌 되지는 않을까
관광산업 발전하면 외지인들이
자본 갖고 와서 마트 세우면
동네사람들 마트 비정규직 되고
땅값 오르면 감귤농사는 어렵고” ‘멧부리 박’의 카메라는 기록했다 문정현 신부는 2011년 7월3일 아예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강정으로 옮겨왔다. 2009년 사제직에서 정년은퇴한 뒤 강정을 조금씩 왔다 갔다 하던 문 신부는 이곳에서 여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 집(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도 지었다. 1976년 3월1일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의 재심(2013년)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받은 국가배상금을 여기에 썼다. 사업단은 물청소차를 끌고 나와 진흙탕이 된 길에 물을 뿌리며 청소를 했다. 길에서 흘러나온 흙탕물은 강정천으로 흘러들어갔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던 강정천은 어느새 흑갈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봄에 바다에서 강정천으로 알을 낳으러 돌아올 은어는 이 물을 마셔야 한다. “해군기지가 잘 보이는 곳이 있어요.” ‘멧부리 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인천(46)씨가 강정천 옆 언덕배기의 어느 집 옥상으로 안내했다. 뒤로는 구름을 걸친 한라산 자락이 보이고 앞으로는 제주 앞바다가 훤히 보였다. 해군기지 공사현장도 훤하게 드러났다. 기지의 완공된 방파제가 눈에 들어왔다.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길이 55m 남짓한 잠수함 두 척이 보였다. 기지 오른편에는 커다란 율곡이이함도 정박해 있었다. 공사장 곳곳에서는 흙을 퍼 나르는 포클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게 구럼비바위예요.” 박씨가 자신의 카메라 렌즈의 줌을 조절해 구럼비바위를 비추었다. 원래 바닷물과 몸을 부대끼며 놀던 바위는 그 일대가 물웅덩이처럼 변해버렸다. 바위는 이리저리 살점이 뜯겨나간 것처럼 곳곳이 부서진 채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스러져 있었다. 공사장에서 구럼비바위는 물웅덩이 근처에 거추장스럽게 놓여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박인천씨는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카메라로 감시했다. 그는 공사장 옆 멧부리바위 위에 텐트를 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의 기록 덕분에 해군이 법규를 위반해가며 공사하는 현장이 여럿 적발됐다. “저는 원래 용접 노동자였어요. 2012년에 용접 일을 하다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어요. 회사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해주지 않았어요.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다 강정마을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명평화대행진’ 행사를 하는 것을 우연히 봤지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억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들은 뭐가 더 억울한 게 있기에 여기까지 왔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저도 이곳으로 와버렸지요. 어린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혀 가고 있었어요. 평생 혼자만을 위해 살아오던 저를 반성하게 됐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멧부리 박’은 이곳에 살며 해군기지를 감시했다. 해군이 가끔 흙탕물로 만들어버리는 강정천의 물을 길어 밥을 지어 먹었다. 그는 오랫동안 해군의 불법공사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다 정리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많은 이야기들의 끝은 이러했다. “결국 신고를 하면 경찰이나 시에서 출동은 해요. 시정조처를 약속하고 가는데 결국 그다음날 그대로 불법공사를 하고 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요.” 강정 앞바다에서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범섬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마을로 돌아와 고권일 강정마을회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해군과 해군 가족들이 이사 온 뒤 마을 공동체에 생길 변화를 걱정했다. 해군기지에는 군함뿐 아니라 군인들이 함께 들어온다. 고 위원장은 걱정이 많다. ‘강정마을이 전국의 흔한 기지촌처럼 되어버리지 않을까. 동네 식당은 군인들이 주 고객이 되어버리고, 군인을 따라다니는 유흥주점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하지 않을까.’ “군인들이 집단으로 마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큼은 막으려고요. 군이 기지 외곽으로 더 확장해 들어올까봐 그것도 걱정이지요. 벌써부터 헬기 소리 때문에 마을에 소음이 심해요.” 강정마을 도로의 버스정류장에는 “강정마을 공동체 파괴 해군! 꼴도 보기 싫다! 마을 안에 들어오지 마라!”라고 적은 강정마을회 펼침막이 걸렸다.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듯하다.
감옥살이 최고령자 강부언의 울화증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주민들도 꽤 있다. 지난달 마을회장 선거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조경철 회장이 당선되긴 했으나 중도 성향의 2위 후보와 표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기지가 완공되어가는 마당에 실리파가 서서히 힘을 얻어가는 것 아닌지 고권일 위원장은 분석하고 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상업이 발전하고 주민들 삶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고 위원장은 부정적이다.
“관광산업이 발전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외지인들이 자본 갖고 와서 마트 세우고 기념품 가게 세우겠지요.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겠지요. 땅값이 오르면 감귤농사 짓기 어려워져요. 임대료와 세금이 오르지요. 바다를 벗 삼아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마트 노동자가 되어가는 게 행복일까요?”
마을회관에서 만난 또다른 주민 고아무개(54)씨는 현실이 증오스럽다. “구럼비바위는 제가 아버지 따라서 물고기 잡으며 놀던 곳이었어요. 그곳에 누우면 파도 소리, 작은 생물 움직이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그렇게 좋은 곳인데 이제 다 뺏겨버렸어. 마을 주민 속여서 해군기지 만들어버린 전 마을회장 보면 때려버리고 싶어요. 7년 넘게 마을에서 숨어 다니는 건지 얼굴이 안 보이네.”
강부언(75)씨는 이 마을에서 감옥살이를 한 최고령자다. 노인은 우울하다. “2013년에 감옥에 2개월 갇혀 있었어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될 텐데 뭣하러 반대해서 감옥까지 갔다 왔는가 후회도 솔직히 하지요. 하도 속상해서 우울증 약 먹고 버티고 있어요.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마을을 그대로 물려주려고 노력이라도 한 것이니 나는 떳떳하다고 생각하지만.” 강부언씨는 이제 더이상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다. 경찰 제복만 보아도 가슴이 뛰고 화가 치밀어올라 견딜 수 없다.
역시 수개월간 옥살이를 한 주민 송강호(57)씨는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해군기지 다 지었다고 끝이 아니에요. 해군 철수시키고 해군시설은 문화시설로 바꿀 거예요. 군 관사는 평화대학의 학생회관으로 만들 거고요. 지금은 군이 세 보여도 국민을 이기진 못할 겁니다. 우리 국민은 일본에 넘어간 땅도 되찾았잖아요.”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날 아침 9시 해군기지 공사장 앞. 그라인더 소리가 요란하다. 문정현 신부가 나무를 깎고 있었다. 문 신부는 매일 아침 이 작업을 한다. ‘해군기지는 강정의 무덤이다’라고 적고 나무를 깎았다. “오는 정월 대보름에 해군기지 앞에 장승을 세울 거야. 해군기지 짓는다고 싸움이 끝이 아니지. 나에게는 이곳이 골고다 언덕이야. 예수님이 그렇게 힘없이 죽을 뻔하다가 부활했던 것처럼 이곳에서 진실이 거짓말을 이기고 부활하게 할 거야.” 오전 11시가 되자 다시 미사가 시작됐다. 몇몇 주민과 문 신부는 노래를 불렀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살기 좋은 우리 마을 해군기지 웬 말이냐. 안 돼 안 돼 해군기지 절대 안 돼.” 구럼비와 놀던 바닷바람이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서귀포/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구럼비바위 끝내 폭파된 뒤
해군기지 준공 앞두고 있고
주민들은 먹고살기 바쁘지만
공사장 앞 미사는 계속된다 “마을이 기지촌 되지는 않을까
관광산업 발전하면 외지인들이
자본 갖고 와서 마트 세우면
동네사람들 마트 비정규직 되고
땅값 오르면 감귤농사는 어렵고” ‘멧부리 박’의 카메라는 기록했다 문정현 신부는 2011년 7월3일 아예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강정으로 옮겨왔다. 2009년 사제직에서 정년은퇴한 뒤 강정을 조금씩 왔다 갔다 하던 문 신부는 이곳에서 여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 집(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도 지었다. 1976년 3월1일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의 재심(2013년)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받은 국가배상금을 여기에 썼다. 사업단은 물청소차를 끌고 나와 진흙탕이 된 길에 물을 뿌리며 청소를 했다. 길에서 흘러나온 흙탕물은 강정천으로 흘러들어갔다.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던 강정천은 어느새 흑갈색으로 물들어버렸다. 봄에 바다에서 강정천으로 알을 낳으러 돌아올 은어는 이 물을 마셔야 한다. “해군기지가 잘 보이는 곳이 있어요.” ‘멧부리 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박인천(46)씨가 강정천 옆 언덕배기의 어느 집 옥상으로 안내했다. 뒤로는 구름을 걸친 한라산 자락이 보이고 앞으로는 제주 앞바다가 훤히 보였다. 해군기지 공사현장도 훤하게 드러났다. 기지의 완공된 방파제가 눈에 들어왔다. 부둣가에 정박해 있는 길이 55m 남짓한 잠수함 두 척이 보였다. 기지 오른편에는 커다란 율곡이이함도 정박해 있었다. 공사장 곳곳에서는 흙을 퍼 나르는 포클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저게 구럼비바위예요.” 박씨가 자신의 카메라 렌즈의 줌을 조절해 구럼비바위를 비추었다. 원래 바닷물과 몸을 부대끼며 놀던 바위는 그 일대가 물웅덩이처럼 변해버렸다. 바위는 이리저리 살점이 뜯겨나간 것처럼 곳곳이 부서진 채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스러져 있었다. 공사장에서 구럼비바위는 물웅덩이 근처에 거추장스럽게 놓여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박인천씨는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카메라로 감시했다. 그는 공사장 옆 멧부리바위 위에 텐트를 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의 기록 덕분에 해군이 법규를 위반해가며 공사하는 현장이 여럿 적발됐다. “저는 원래 용접 노동자였어요. 2012년에 용접 일을 하다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어요. 회사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해주지 않았어요.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다 강정마을 사람들이 그곳에서 ‘생명평화대행진’ 행사를 하는 것을 우연히 봤지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억울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 사람들은 뭐가 더 억울한 게 있기에 여기까지 왔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 저도 이곳으로 와버렸지요. 어린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혀 가고 있었어요. 평생 혼자만을 위해 살아오던 저를 반성하게 됐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멧부리 박’은 이곳에 살며 해군기지를 감시했다. 해군이 가끔 흙탕물로 만들어버리는 강정천의 물을 길어 밥을 지어 먹었다. 그는 오랫동안 해군의 불법공사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어떻게 다 정리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많은 이야기들의 끝은 이러했다. “결국 신고를 하면 경찰이나 시에서 출동은 해요. 시정조처를 약속하고 가는데 결국 그다음날 그대로 불법공사를 하고 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요.” 강정 앞바다에서 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범섬 일대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마을로 돌아와 고권일 강정마을회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해군과 해군 가족들이 이사 온 뒤 마을 공동체에 생길 변화를 걱정했다. 해군기지에는 군함뿐 아니라 군인들이 함께 들어온다. 고 위원장은 걱정이 많다. ‘강정마을이 전국의 흔한 기지촌처럼 되어버리지 않을까. 동네 식당은 군인들이 주 고객이 되어버리고, 군인을 따라다니는 유흥주점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하지 않을까.’ “군인들이 집단으로 마을 왔다 갔다 하는 것만큼은 막으려고요. 군이 기지 외곽으로 더 확장해 들어올까봐 그것도 걱정이지요. 벌써부터 헬기 소리 때문에 마을에 소음이 심해요.” 강정마을 도로의 버스정류장에는 “강정마을 공동체 파괴 해군! 꼴도 보기 싫다! 마을 안에 들어오지 마라!”라고 적은 강정마을회 펼침막이 걸렸다.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듯하다.
98%의 준공률을 보이는 제주 해군기지는 이르면 이달 말 준공식을 연다. 지금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훼손된 구럼비바위가 흔적만 남아 기지 내 호수의 조경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주/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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