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8일 전북 전주 시내에 4·5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각 후보들의 벽보가 붙어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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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계란으로 바위 치긴 거 몰라? 그래도 바위에 계란이라도 묻을 거 아녀.”
지난 3월28일 벚꽃 흐드러진 전주천을 지나 전주 서부시장에 들어서니 ‘기호 4번 강성희’ 이름의 하늘색 점퍼를 입은 선거운동원 2명을 가리키며 옷가게 주인 심성옥(55)씨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징허게 장사가 안된다”고 푸념하면서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명을 받든 유세를 하든 저렇게 꼭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면서 치운다”며 ‘하늘색 점퍼 선거운동원’을 칭찬했다.
“그게 하루 이틀 쌓여 석달이 넘어가니 후보가 누구인지 궁금할 정도여. 누구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하는데, 요즘은 저렇게 진심인 사람들이 나서서 속 시원하게 좀 싸워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
올해 4·5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전주을 지역구가 들썩이고 있다. 예상과 달리 진보당 후보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전주을에선 지난해 5월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무효되면서 국회의원을 다시 뽑게 됐다. 민주당이 무공천을 결정하자 임정엽 전 완주군수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정의당은 유력 예비후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출마를 포기하면서 이번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 2016년 총선 때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됐던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까지 불출마를 선언하자 임 전 군수의 쉬운 승리가 예상됐다. 그러나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판을 뒤흔들었다. 강 후보는 2003년부터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어 정규직화를 이끌어낸 노동조합 간부 출신으로, 최근까지 전국택배노조 전북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한 정치 신인이다. <전주 문화방송> 의뢰로 리얼미터가 3월19~21일 전주을 유권자 50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강 후보는 25.9%, 임 후보는 21.3%를 기록했다.(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포인트) <민중의 소리> 의뢰로 에스티아이가 3월24~25일 전주을 유권자 7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강 후보 29.1%, 임 후보 25.4%였다.(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7%포인트. 이상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이 지역에서 민주당 (출신) 후보를 다른 당 후보가 앞선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6년 총선에서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는 국민의당까지 가세한 3자 대결에서 어부지리로 승리(111표 차이)할 수 있었다.
“선거운동요? 새벽 버스 종점부터요.”
3월28일 오전 7시, 꽃샘추위를 뚫고 전주시 완산구 천잠로 사거리에 모인 진보당 선거운동원 50여명이 입을 모았다. 서울에서 3주 전 내려왔다는 서울청년진보당 대학생위원장 채유빈(27)씨는 “내려오자마자 새벽 버스 첫차에 올라 출근길 인사를 했다”며 “처음엔 낯설어하시더니 요즘엔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겨레> 취재진이 만난 운동원 중 상당수는 채씨처럼 중앙당에서 지원 나온 이들이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3월23일부터 윤희숙 상임대표와 김재연·이상규 전 대표 등 전·현직 지도부가 수시로 합류했다. 선거운동에 투입되는 진보당원은 평일에 300명, 주말엔 1500명 정도라고 진보당 쪽은 설명한다.
진보당의 전신은 박근혜 정부가 2014년 해산한 통합진보당이다. 민중연합당, 민중당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오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울산 동구청장(김종훈), 광역의원 3석, 기초의원 17석을 확보하며 반전의 계기를 잡았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진보당은 정의당과 연대를 이뤄내진 못했지만 녹색당과 정책연대를 맺으며 진보 야권 단일후보로서의 모양새도 갖췄다. 전권희 진보당 전북도당 정책위원장은 “윤석열 정부 검찰독재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기조 아래 내년 총선은 야권 전체가 힘을 모으는 장이어야 한다”며 “이번 전주을 승리는 내년 총선에 녹색당만 아니라 정의당이나 민주당까지 하나로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주을엔 진보당 사람만 북적이는 게 아니라 펼침막도 곳곳에 나부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월급은 일본에서 받아라”, “군부 독재 10년보다 검찰 독재 1년이 더 징글징글혀”. 윤석열 정부 비판 문구가 특히 호응을 얻은 듯했다. 택시운전사인 이병열(70)씨는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딜 가나 (진보당이 쓴) 속 시원한 글이 보이니까 그 얘길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빙 승부가 계속되면서 임정엽 후보도 본격적인 공세에 나섰다. 임 후보는 3월28일 오전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운동권 진보당에 전주를 뺏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틀 전엔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이곳을 방문해 임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임정엽 캠프의 조형철 유세단장은 “오늘 기자회견 뒤 투표장에서 진보당 찍기를 망설이는 유권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박 전 원장이 다녀간 뒤로 민주당 쪽 지지세가 모이는 게 느껴진다. 결국 조직이 우세한 우리 쪽에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티브이 토론에서 임 후보는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강 후보가) ‘부당하다’ 말하지 않고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미 동맹이 굴욕적이라고 주장한다”며 김경민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강 후보를 공격했다. ‘종북 색깔론’의 수위를 점점 높이는 모양새다. 전주 지역의 민주당 관계자는 “임 후보가 이 지역 출신으로 검증된 후보라는 건 분명한데, 그걸로 돌파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네거티브 공세가) 표심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민주당 없는’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에서 이탈한 민심의 향배가 승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신시가지인 효자동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하는 한 30대 여성은 “이곳에선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 중 나처럼 ‘차라리 국민의힘이 낫다’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그만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 총판 대리점을 운영하는 조규식(47)씨는 “나는 한동안 되는 사람(민주당 후보)만 찍었다. 그러다 안철수 지지자가 됐고, 정의당을 밀다가 최근 진보당원이 됐다”며 “가둬놓은 물고기처럼 출마만 하면 표를 거저 가져가는 줄 아는 민주당이 여기서 한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전주/하어영 기자
ha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