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로 이름난 성주 한개마을 주민 “수백년 전통 마을 자체가 사라질 위기”
전문가 “정부가 안전지대란 사드 레이더보다 낮은 곳도 전자기파 영향을 받아”
지난 20일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한개마을’ 들머리에 사드배치 반대 내용의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민속마을 앞에 사드가 웬 말이냐!’
21일 오전 11시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 입구에는 이런 펼침막이 내걸려있었다. 마을 남쪽으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예정지인 성산(높이 383m)이 보였다. 한개마을에서 성산까지는 직선거리로 3㎞ 가량이다.
한개마을은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에 있는 843㎡ 크기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75채의 전통한옥에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한옥은 대부분 지어진 지 100년~200 가량 됐다. 조선 세종 때인 1450년 처음 형성된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한개마을 담장.
한개마을은 영취산(331m)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이천과 백천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당이다. 집을 둘러싼 돌담과 골목길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집들은 지붕, 대청, 툇마루 등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고 전통 가재도구 등도 잘 보존돼 있다. 지난 2007년 12월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됐다. 이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한개 민속마을 보존회’가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
안채 전경
평일에는 보통 200여명, 주말에는 500여명이 한개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사드가 이 마을 바로 근처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한개마을 주민 이수인(59)씨는 “600여년 동안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가치를 인정해 문화재로 지정됐다. 하지만 마을 바로 남쪽 성산에 사드가 배치되면 주민들이 떠나 마을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걱정했다. 그는 또 “정부는 성주군민 의견 수렴 등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 정부가 성주 군민을 병참물품으로 취급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개마을 전경
한개마을 뿐만 아니라 성주에서 사드 배치 반대 목소리가 거센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 한가운데 사드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성주군에는 성주읍을 중심으로 주변에 9개 면이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성주 전체 인구 4만5065명 가운데 31.12%(1만4023명)이 성주읍에 살고 있다. 성주읍에는 성주군청과 아파트를 비롯해 초등학교 2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2곳, 유치원 4곳, 어린이집 13곳이 몰려있다. 이재동(48) 성주군농민회 회장은 “일본에서는 사람이 안사는 바닷가 등에 레이더를 배치하던데, 왜 성주에는 사람이 가장 많이 사는 성주읍을 쳐다보게 사드를 배치하려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가 성주 주민을 얼마나 우습게 알고 무시했길래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성주읍 중심가와 사드가 배치되는 지역은 한개마을과 마찬가지로 3㎞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미 육군 기술교범 자료에는 사드 레이더(AN/TPY-2)의 강한 전자파로 통제되는 지역은 전방 좌·우 65도로 5.5㎞다.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m까지는 사람의 출입이 아예 금지되고, 3.6㎞까지는 허가받은 사람만 출입이 가능하다. 5.5㎞ 까지는 전기기폭 장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항공기 등의 출입이 금지된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레이더로부터 100m만 전자파에 조심해야될 구간이고 그 이후는 안전구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사드 레이더가 전자파를 쏘는 각도가 윗쪽으로 5도 이상이기 때문에 100m 밖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형철(52) 경북대 교수(물리학과)는 “사드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길기 때문에 강력한 전자기파를 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사드 레이더가 5도 이상으로 자기파를 쏘니까 100m 이상 떨어진 저지대는 안전하다고 설명하는데 모든 기파는 퍼져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치라이트나 스포트라이를 한 곳에 집중해서 비춘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까지 밝아지는 현상처럼 사드 레이더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지역에도 전자기파의 영향은 반드시 생긴다. 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부가 나서서 엄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주 주민들 사이에서는 전자파에 대한 불안과 참외 판매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높다. 성주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1만8600여명이고, 이 가운데 57%가 참외를 재배한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성주읍에는 성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부동산 거래가 뚝 끊어졌다. 성주읍의 한 부동산중개사는 “정부의 성주 사드 배치 발표 전에는 하루 평균 4명 정도가 건물이나 땅을 사려고 문의를 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하루종일 기다려봐도 아예 없다”고 말했다. 아직 배치도 안된 사드의 그림자가 성주 전체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성주/글·사진 김영동, 김일우 기자, 사진 문화재청 누리집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