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팀 기자 추석이 왔어도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은 조마조마하다. 대입 수시모집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늦어도 연휴가 끝나기 전에는 지원할 대학을 결정해야 한다. 이런 집들엔 명절 분위기 대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하필이면 이때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건이 터졌다. 광주의 한 고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성적을 조작한 것이다. 놀란 교육부는 전국 고교 3200여곳을 전수조사하겠다고 예고했다. 학생부의 공신력이 도마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0년 인천 한 고교에서 300여명의 학생부를 수정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때도 전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고교 202곳에서 7671건을 부당하게 고친 것으로 확인됐다. 교원 717명이 징계를 받았고, 보완된 새 체계가 도입됐다. 한동안 학생부를 둘러싼 잡음은 수그러드는 듯했다. 하지만 수시모집 비율이 70%로 늘면서 학생부의 중요성이 커지자 반칙들이 번지고 있다. 지난 6월 대구의 한 교사는 자신이 지도하는 동아리 학생 30명의 학생부를 무단으로 고쳤다. 권한이 없었던 그는 동료의 인증서로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을 들락거리다 끝내 파면됐다. 석달 뒤 광주에서도 경찰이 수사를 벌였다. 교장이 1등급 학생들의 학생부를 관리하도록 지시했고, 접속 권한이 없는 교사 2명이 36건을 고쳤다. 심지어 한 학생의 수학 성적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올려주기도 했다. 대가로 학부모에게 200만원을 받았다. 성적 조작은 다른 교사한테 발각되면서 20여일 만에 원상으로 되돌려졌지만 나이스엔 이미 큰 구멍이 뚫린 뒤였다. 이 학교는 애초 1~2명에 그쳤던 서울대 합격자를 몇해 전부터 8명까지 늘려 부러움을 샀다. 눈치 빠른 학부모들은 재빨리 이 학교 주변으로 주소지를 옮기기도 했다. 고교 상당수가 상위권의 학생부를 관리해 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광주만의 일도, 이번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들은 관리에 ‘하수’와 ‘상수’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하수는 사후에 학생부를 마사지한다. 내용이 나온 뒤 있는 사실을 포장하고, 없는 사실도 끼워넣는다. 정정이 잦을 수밖에 없고 접속기록을 남기게 된다. 상수는 사전에 학생부를 디자인한다. 입학 직후 대상을 선정해 내용을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 전공과 관련한 독서목록을 제시하고, 맞춤형 경시대회를 열어 입상을 몰아준다. 이들을 위해 보통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들러리를 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위권 학생의 학생부는 20~30쪽, 보통 학생 학생부는 5~8쪽으로 갈리는 양극화가 일어난다. 학생부를 입학사정관의 입맛에 맞게 쓰는 기술은 학원에서 학교로, 사립에서 공립으로, 도시에서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연수(?)를 받은 교사들의 솜씨는 해마다 진화하고, ‘자동봉진’(창의적 체험 분야의 자율·동아리·봉사·진로활동)이 승부처라는 등 전문용어도 등장한다. 일부는 아예 학교를 무시하고 3년 동안 수천만원을 내야 하는 외부 자문을 받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몇년 뒤 학생부가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긍정적인 내용들을 천편일률로 나열하는 학생부 관리의 부작용은 너무나 뚜렷하다. 학생부를 믿을 수 없는 만큼 점수와 석차로 선발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질 것이다. 대학입시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면 학교는 다시 시험지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겨우 첫걸음을 뗀 공교육 정상화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학교를 사랑하는 교사들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학생부가 아니라 ‘학생들’을 마사지하고 디자인하자고….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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