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밀밭 거쳐 광주 금남로 노제
시민 5천여명 2.5km ‘농민가’ 행진
시민 5천여명 2.5km ‘농민가’ 행진
붉은 흙이 유골함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고 백남기(69) 농민의 하관식이 6일 오후 5시 광주시 북구 망월동 5·18 구 묘역에서 시작됐다. 축복과 헌화, 청원기도 등을 말없이 지켜보던 부인 박경숙(63)씨가 오열했다. 딸 민주화(30)·도라지(35)씨 등 1남2녀의 자녀들이 서로 어깨를 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지인과 가족들이 한 삽 한 삽 흙을 떠 ‘들꽃같은 사람’의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은 지난 9월25일 세상을 뜬 지 42일 만에 영면했다. 지난해 11월 전남 보성 집을 나서 서울민중궐기대회에 참여했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은 지 꼭 359일째 되는 날이다. 고인이 몸을 누인 망월동 5·18 구 묘역엔 이한열·강경대 등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민족·민주열사 46명이 안장돼 있다.
고인의 주검은 그가 살던 전남 보성군 집을 거쳐 이날 낮 12시 광주 금남로에 도착했다. 시민 5천여명이 참석해 열린 노제에서 백씨 딸 민주화씨는 “슬퍼하는 와중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고, 분노해야 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 덕분에 부검이라는 그 끔찍한 현실에서 아버지를 구해냈고, 다행히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했다. 민주화씨는 아들 지오(4)군과 함께 연단에 선 채 <농민가>를 불렀다. 시민들은 이날 금남로와 대인시장 앞을 거쳐 서방시장 앞까지 2.5㎞가량 만장을 들고 행진했다.
‘선한 사람’을 무참하게 짓밟은 ‘나쁜 사람’들이 여전히 침묵하는 현실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문경식 고 백남기 농민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상임위원장은 “고인을 살인 물대포로 쓰러뜨린 뒤 수사도, 단 한마디의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거부한 채 사인 조작용 부검을 강행하려던 정권은 이제 국민의 총궐기로 붕괴되고 있다”며 “어르신의 유산을 계승해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정의를 회복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오전 고인의 고향 전남 보성에서 열린 노제에선 고인을 모신 운구차가 그가 평생 농사를 짓던 생가와 밀밭 등지를 들렀다. 권용식 보성군농민회장은 “농촌과 농민을 걱정하던 형님이 그립다. 지금이라도 ‘동지들 배고프제~’하시며 막걸릿잔을 들고 나타날 것만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날인 5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발인식에 이어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례미사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등이 공동 집전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우리 먹거리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바라는 고인의 외침이 참혹하게 살수차에 의해 죽을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느냐”고 물었다. 운구 행렬은 영결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까지 이어졌고 시민 8천여명이 광장에서 백씨의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광주·보성/정대하·안관옥 기자, 고한솔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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