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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추가반입? “오늘도 뜬눈으로 지새웠죠”…소성리 ‘긴 밤’

등록 2017-05-03 11:30수정 2017-05-03 22:09

[르포] 경북 성주 “평화구역” 소성리
3일 새벽 ‘사드 장비 추가 반입설’ 퍼지자
전국서 모인 100여명 회관에서 주민과 함께
“국방부 불신…대선 전 ‘사드 알박기’ 우려”
3일 새벽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 한 중간에 주민들이 써놓은 손팻말이 세워져 있다.
3일 새벽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 한 중간에 주민들이 써놓은 손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 지역은 평화구역이므로 사드 배치 관련 장비 및 인력 출입 자체를 금함.’

3일 새벽 1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 주민들이 이렇게 써놓은 손팻말이 도로 한중간에 세워져 있다. 주민들은 왕복 2차로인 도로 양쪽에 승용차 수십 대를 줄지어 주차해놨다. 새벽을 틈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장비 추가 반입을 막아보려고 소형차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비워놨다. 새벽 시간에 승용차를 도로에 세워두는 것은 어느새 주민들의 일상이 됐다. 사드가 배치되는 달마산(해발 680m)에 사드 장비를 반입하려면 회관을 지나 2㎞를 올라가야 한다.

이날 0시를 앞뒤로 사드 장비 추가 반입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어 국방부가 이를 부인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이날 새벽 소성리 회관 주변에는 전국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소성리 회관과 주변 천막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몇몇 사람들은 회관 앞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밤을 지낼 준비를 했다.

“우리나라 국방부가 주민들 상대로 하도 사기를 쳐서 이제는 국방부 말을 믿지 않아요. 국방부는 오늘이 아니라고 말해놓고도 ‘사드 알박기’를 마무리하러 올지도 모르거든요.” 성주 초전면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주민 이종희(60)씨가 역정을 냈다. “새벽까지 집회하고, 경찰이 깔리면 일손 놓고 달려오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농사도 지어야 하고 죽을 지경입니다. 국방부 자기들은 잠 잘 자면서 여기 주민들은 잠을 못 자게 만들어놨어요.”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여름 사드가 성주읍 성산에 온다고 했을 때는 눈만 뜨면 성주군청 앞마당에 나가 있었죠. 그리고 사드 배치 지역이 초전면 달마산으로 바뀐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소성리 회관에 나오고 있어요.” 성주 대가면에서 벼와 딸기 농사를 짓는 주민 박수규(54)씨는 “사드 때문에 일상이 무너졌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됐다. 소성리 회관에 나가 있다가도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집에 가서 일을 해놓고 다시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3일 새벽 4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가에서 사람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밤을 보내고 있다.
3일 새벽 4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가에서 사람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밤을 보내고 있다.
몇몇 주민들은 이날 새벽 불안한 듯 소성리 회관 주변을 맴돌며 도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도로가에는 난로 세 개가 놓여 있었다. 10여명이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소성리 회관으로 올라오는 도로 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도로가에 컨테이너로 만들어놓은 교당에선 원불교 교무 10여명이 잠을 자지 않고 도로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소성리 회관에서 달마산 쪽으로 700m를 가면 나오는 진밭교에서도 원불교 교무들이 천막을 쳐놓고 밤새 평화를 기원하며 기도를 했다.

“소성리 회관에 사람들이 가장 적고 잠을 자고 있는 새벽 5시까지가 가장 취약하고 가장 긴장되는 시간입니다. 이때까지 아무 일이 없으면 ’오늘은 별일이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긴장이 풀려요.” 도로가 난로 옆에 앉아 있던 원익선 원불교 교무가 이렇게 말했다. “지난 26일 새벽 첫 사드 장비 반입 때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 2개가 들어갔고 발사대 4개가 남은 상태인데, 마저 다 들어갈까봐 걱정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최대한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볼 생각이에요. 지금 이곳은 시민과 경찰, 군대만 있고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공간이에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3일 새벽 5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가에 컨테이너로 지어진 교당에서 원불교 교무들이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
3일 새벽 5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회관 앞 도로가에 컨테이너로 지어진 교당에서 원불교 교무들이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
이날 새벽 소성리 회관 앞 도로에는 단 한 대의 차량도 지나가지 않았다. 새벽 4시44분이 되자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이 트면서 순식간에 새벽 어둠이 사라졌다. 소성리 회관과 주변 천막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도롯가로 모여들었다. 새벽 5시 원불교 교무들은 아침 기도를 올렸다. 새벽 5시38분께 도시락을 실은 조그만 트럭이 달마산을 향해 올라갔다. 이날 소성리 회관 앞 도로를 처음 지나간 차량이다. 이 트럭이 지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은 아니었구나”라는 말이 들렸다.

대구에서 온 박진원(25)씨는 “오늘 자정을 전후해 사드 장비가 추가로 들어온다는 뉴스를 보고 소성리에 가서 주민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다행히 사드 추가 반입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중에 우리가 없을 때 사드가 들어오면 나이 많은 주민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임순분(61) 소성리 부녀회장은 “소성리를 찾아 사드 배치 철회를 약속한 대선 후보는 정의당 심상성 후보와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밖에 없는데, 가장 마음에 든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애매한 입장을 나타내서 좀 그렇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아서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드를 찬성하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나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기대할 것도 없이 아예 관심을 끄고 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보수표 좀 받아보겠다고 사드 배치 반대에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것 같은데 우리들을 이용한 것 같아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성주/글·사진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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