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취업준비생(18~34살)에게 매달 30만원씩 최대 9개월 동안 지급하는 청년구직촉진수당 도입을 약속했다. 이 수당은 다음달 본격 시행을 앞둔 서울시 청년수당 정책과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에서 비롯됐다.
박근혜 정부는 성남·서울시의 청년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제동을 걸었지만, 경기·광주·부산·대전 등의 청년복지정책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년배당(수당) 정책은 무상급식에 이어 꼬리(지역)가 몸통(대한민국)을 흔든 사례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이 시작한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복지로 자리잡았다. <한겨레> 창간 29돌을 맞아 경기 오산 일반고 고교생 진로탐색프로그램, 충북 영동 경로당 주치의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지방정부의 맞춤형 행정이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방자치 의미를 살리는 현장을 살펴봤다.
강남훈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장(한신대 교수)은 “지방분권 개헌 논의 과정에서 지방정부의 조세권과 복지 지출 자율성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와 협의 없이 정책을 집행해온 관행을 없애야 한다”며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건축은 여러분에게 뭘까요?’ 지난 8일 경기도 오산시청에서 만난 고교생들에게 물었다. 백진우(18·운암고 2)군은 “설계”라고 했다. “인생을 설계하고, 건물을 설계하고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자신들을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수민(18·성호고 2) 양은 “미래의 건축가로 성장하는 꿈”이라고 했다.
이들은 오산시가 일반고 학생들을 상대로 진행중인 진로선택프로그램인 ‘얼리버드’에서 건축융합분야의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건축의 철학자’로 불리우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역할 모델이라는 백군은 2년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강원 원주에 있는 미래적이고 기하학적 건물인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 산’과 같은 설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래 고등학생에 견줘 진로 선택에 대한 고민이 깊고 구체적이다. 성적에 따라 인생 진로도 정해지는 학력 경쟁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어떻게 오롯이 자신의 꿈을 갖게 됐을까?
‘일찍 일어난 새가 더 많은 먹이를 얻는다’는 뜻의 ‘얼리버드’가 오산시에서 시작된 것은 2014년 7월이었다. 처음 이름은 ‘매자닌(Mezzanine) 스쿨’이었다. 스위스어로 ‘연계’라는 뜻의 이 프로그램은 일반고 고교생들이 공부와 일을 연계해 적성에 맞는 진로를 빨리 찾도록 도왔다. 첫 해는 관광경영분야에서 고교생 40명의 신청을 받아 방과 후 3개월 과정으로 시작됐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해당 분야의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이 가르치고 지역 업체는 체험 현장을 제공하는 ‘산관학 모델’이다.
시행 첫해, 오산시는 학생 만족도를 조사하고 직업 진학 프로그램 용역도 실시해 내용을 심화했다. 2015년부터는 명칭도 ‘얼리버드’로 바꾸고 4년차인 올해는 3억원을 들여 11개 분야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유아교육, 경찰행정, 관광, 정보통신(IT)과 기계, 건축융합, 보건의료, 미디어컨텐츠, 뷰티, 요리, 실용음악과 진로컨설트 등 학생들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다.
수업은 매학기 44시간이고 8차례의 이론 교육과 4차례 현장 실습으로 진행된다. 초기엔 방과후 수업에서 지금은 매주 토요일 수업으로 바뀌었다. 오산의 6개 거점 고교에서 수업이 있는 날은 참여 열기로 뜨겁다. 올해 건축융합분야를 신청한 정현선(18·세교고 2)군은 “진로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 아닐까. 성적은 진로를 선택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내 적성을 아는 것이다. 얼리버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경험을 잘 살려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로 시행 4년차를 맞은 얼리버드 프로그램을 거친 학생은 현재 참여중인 학생 376명을 포함해 1200여명이 넘는다. ‘얼리버드’가 효과를 내자 교육부도 나섰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전국 공모에 나서 인천·대구·전남·경기교육청이 참여했고 올해 이를 전국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로 확대해 시행 중이다.
왜 교육부나 교육청도 아닌 지방정부인 오산시가 고교생 진로선택프로그램 운영에 공을 들일까? ‘얼리버드’에는 ‘행정을 주민 눈 높이에 맞춘다’는 오산시의 고민이 스며있다.
오산시는 경기도에서 가장 젊은 도시다. 인구 20만여명에 평균 나이는 34.7살이다. 전체 학생이 4만7천여명이고 주민들의 최대 관심은 교육이다. 하지만 오산 8개 고교 중 자율형 공립고 1곳를 빼면 학부모들의 기대를 충족할 만큼은 아니다. 학부모 10명 중 4명은 ‘교육 여건이 나은 인근 대도시 이주’를 고민했다.
그러던 2014년 곽상욱 오산시장은 사고 뭉치인 고교생 6명을 오산의 한 고교 교장이 빵기술을 가르쳐 성공시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곽 시장은 “선진국에서는 일과 학습을 병행해 고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도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고 현실은 어떤가? 70%의 학생은 학업을 포기하고 목표도 없이 수업 듣기를 종용당하고 학원으로 내몰리지 않나. 당시 이야기를 듣고 일반고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춰 이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는게 필요하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얼리버드’에 이어 오산시는 ‘미리 내일 학교’ 등 주민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잇따라 내놓았다. 2015년 만든 ‘미리 내일 학교’는 자유학기제를 이용해 중학생들의 조기 진로체험을 도와준다. 올해로 7년째인 ‘시민참여학교’에서는 학부모가 초등생들의 야외 현장 체험 교사로 나섰고, 올 9월에는 100살까지 학습을 통해 시민들이 행복한 ‘오산백년시민대학’도 개교한다.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학교인 교육도시 오산에서는 ‘온마을이 학교’로 불린다.
박정임 서울과학기술대 국제교육연구센터장은 “오산시가 얼리버드를 하면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뭐가 필요한지를 알고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고 행복해했다. 연령대별로 시민들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내놓고 몇년간 꾸준히 프로그램을 지속하며 성과를 낸 것은 오산시만의 혁신사례다”고 평가했다.오산/홍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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