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구 용현동 용정근린공원에 설치된 토지금고 마을박물관.
인천시 남구 용현동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용정근린공원 한쪽에 파란색 컨테이너 두 동으로 이뤄진 ‘토지금고 마을박물관’이 있다. 사라져 가는 마을의 옛 정취와 흘러간 시간을 주워 담아 놓은 ‘기억저장소’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전시 기획부터 운영까지 도맡아 하는 특별한 박물관이다. 마을을 떠난 이들에겐 옛 추억을, 새로 마을로 유입된 주민에게는 지난날의 흔적을 보여준다.
1970년대 공기업인 ‘토지금고’가 갯벌이던 용현2동과 5동 일대를 매립해 대규모 택지사업을 한 뒤 주민들이 이곳을 ‘토지금고’라고 불러왔다. 마을큐레이터가 토지금고라고 불린 유래를 찾는 과정에서 사라져 버린 낙섬과 염전의 역사를 발굴했다. 마을큐레이터 이민재(52·여)씨는 “재개발로 토지금고 일대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있다. 옛 마을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도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곳이자 새로 마을 주민이 된 이들과 함께 미래를 여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9명의 마을큐레이터가 순번을 정해, 방문객에게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곳에선 독일 사진가 클레가가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남은 삶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아 ‘이방인의 눈에 비친 마을’ 등 3차례의 기획전을 열었다.
지난해 11월 용현1·4동 행정복지센터 2층에 개관한 독정이 마을박물관.
2015년 인천시립박물관과 남구가 함께 진행한 ‘인문도시지원사업’의 하나로 처음으로 시작된 마을박물관은 2015년 11월 1호 토지금고에 이어, 2016년 11월 2호 쑥골, 2017년 11월 3호 독정이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남구가 공간을 마련하고, 시립박물관이 설치 예산과 큐레이터 교육을 지원했다.
마을큐레이터는 성별도, 연령도, 직업도 다르지만, 해체되는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를 되살려보자는 의지로 자원봉사에 나선 주민들이다. 배성수 시립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토지금고 마을박물관이 펴낸 첫 도록에서 “마을의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내는 일은 어떤 학예사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에 미치지 못한다. 그것이 마을큐레이터가 마을박물관을 운영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천시 남구 도화동의 한 폐가를 수선해 만든 쑥골 마을박물관은 개관한 지 여섯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해 4월부터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입구에 휴관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하지만, 운영상 한계도 드러났다. 도화동의 한 폐가를 리모델링해 지은 쑥골 마을박물관은 개관한 지 여섯달도 되지 않은 지난해 4월부터 휴관에 들어갔다. 자원봉사자 부족과 전시 콘텐츠 미흡 등 이유다. 몇 차례 마을큐레이터 모집 공고를 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용현1·4동 행정복지센터 2층에 마련된 독정이 마을박물관은 아직까진 찾는 이들이 많지 않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개관 뒤 2년 동안은 마을큐레이터에게 전시·기획 등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이후부터 토지금고처럼 주민 독자적으로 운영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