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북 밀양시 가곡동 세종병원 들머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법규 안에 방치된 여러 잠재적 위험성이 또다시 대형화재 참사로 이어졌다. 4년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바로 한 달 전 충북 제천 화재 참사 등과 같은 요인이 이번 밀양 화재 참사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경남경찰청은 28일 세종병원에 비상발전기가 있었지만, 화재 당시 가동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최치훈 경남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이날 현장감식을 한 뒤 “비상 발전기는 정전 때 자동으로 가동되는 방식과 수동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있는데, 세종병원은 수동작동을 해야 했다. 감식 결과 병원 뒤쪽에 있던 비상용 발전기에 수동 작동 흔적이 없었다.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의 화재로 숨진 38명 가운데 33명의 사망원인은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지만, 나머지 4명의 사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이들 4명 가운데 3명은 3층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살던 환자였다. 화재 발생 뒤 병원 전체가 정전되면서 인공호흡기 작동이 멈추는 바람에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병원은 스프링클러나 옥내소화전도 갖추지 않았다. 관련 시행령은 바닥면적 1000㎡ 이상인 병원에 스프링클러 연면적 1500㎡ 이상 병원에 옥내소화전을 설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병원은 바닥면적 394.78㎡ 연면적 1489.32㎡다.
세종병원 건물 1층은 벽 없이 기둥으로 지탱하는 필로티 구조다. 응급실 1층 천장에서 난 불이 단열재인 스티로폼 등을 태우면서 유독가스가 대거 발생했다. 불과 연기는 중앙 계단 등을 통해 순식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지난달 29명의 희생자를 낸 충북 제천 화재 참사 때도 필로티 구조 건물 1층에서 난 불과 유독가스가 건물 위로 타고 올라가 인명피해가 컸다. 이 때문에 방화구획 규정 재정비 등 필로티 구조 건물의 화재 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제천 화재 참사에서 지적된 ‘셀프’ 소방안전점검도 여전했다. 소방안전관리 대상은 소화기구, 경보설비, 소화설비, 피난설비, 소화활동 설비 등인데, 작동 여부만 확인해 소방당국에 내면 된다. 세종병원의 소방안전 관리는 이 병원 직원이 직접 해왔다. 밀양소방서는 지난 3년 동안 이 병원의 소방안전점검에서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합법이라는 이름 아래서 대형화재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류상일 동의대(소방행정) 교수는 “소방안전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널리 퍼져있다. 법규 틈에 있는 병원 등 다중이용시설 가운데 스프링클러, 비상 발전기, 배연장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소방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춘 곳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용 증가 때문이다. 정부도 이 부분에 대해 여러 부처와 협업을 통해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다중이용시설은 반드시 필요한 소방안전설비를 갖추도록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