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때 자신이 돌보던 환자를 끝까지 책임져 무사히 대피시킨 50대 요양보호사의 활약이 뒤늦게 알려졌다. 구조·대피 과정에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병원에 치료 중인 요양보호사 이아무개(58) 씨. 그는 자신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얼굴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갑자기 화재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어요.”
지난 26일 아침 경남 밀양 세종병원 꼭대기 층인 5층(병원 특성상 4층이 없어 병원에선 6층으로 분류) 병실에서 환자 16명의 아침 식사를 돕던 요양보호사 이아무개(58)씨는 “창문 밖을 보니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환자들에게 수건을 나눠주고 코와 입을 막으라고 고함쳤다. 그는 고령에다 치매 증상이 있던 환자 대부분을 혼자 힘으로 대피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이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 5층에 갇혀 있다고 말한 뒤 119 구조를 요청했다.
이씨는 “평소 화재 대피 훈련을 받았는데도 머릿속이 하얘졌다. 조금씩 검은 연기가 병실로 들어오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고 말했다. ‘소방대원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소방대원이 나타났다.
이씨는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시꺼먼 연기가 들어찬 병실을 여러번 드나들며 마지막 환자가 대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에야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씨는 28일 “소방대원이 환자를 구조했고 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이씨는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 참사 희생자 가운데는 이 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 등 3명도 있다. 이들의 유족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7일 오후 밀양농협장례식장에서 만난 간호조무사 김아무개(37)씨의 남편 이아무개(37)씨는 사고 소식을 들었던 순간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아내는 평소처럼 아침 7시에 출근했어요. 30분 뒤 ‘살려줘’라며 전화가 왔더라고요. 자신을 살려달라는 것인지 환자를 살려달라는 것인지 지금도 너무 궁금합니다.”
그는 아내가 환자를 돌보는 일에 긍지를 갖고 있었고 간호사의 길을 걷고자 최근 간호대학 입학 원서를 냈다고 했다. “그렇게 원했던 간호사인데 입시 결과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황망히 세상을 떴습니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환자를 대한 아내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남편으로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아내를 이렇게 기억했다.
연합뉴스, 밀양/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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