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세종병원 응급실 바깥쪽에 설치된 수동 비상발전기(가운데 붉은색 기계). 지난 26일 화재 당시 병원 전체가 정전됐지만, 병원 직원 아무도 비상발전기를 가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의 진상이 차츰 밝혀지면서, 화재 발생 초기 5분 동안 병원 직원들이 조금 더 침착하고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뼈아픈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대형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사실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대책본부와 수사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세종병원 1층 응급실 바깥쪽에 22㎾ 용량의 수동 비상발전기가 설치돼 있어, 정전되더라도 비상발전기를 가동하면 승강기·중환자실·비상등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 당시 세종병원에는 의사 1명, 간호사 11명, 간병사 3명, 의무과 1명, 방사선과 1명 등 17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비상발전기를 가동시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2층에서 승강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던 거동이 불편한 환자 5명과 간호사 1명은 정전으로 승강기가 멈추는 바람에 모두 유독 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3층 중환자실 사망환자 9명 중 3명은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가 아닌 것으로 부검 결과 드러났다. 사고 당시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정전 때문에 인공호흡기 작동이 멈춰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19 신고도 늦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1층 응급실 안 환복·탕비실 천장에서 연기가 나자 원무과 직원과 간호사 1명이 소화기로 직접 불을 끄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그제야 원무과 직원이 119에 신고했다. 이들은 아침 7시30분께 불을 발견하고, 7시32분 119에 신고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현장감식반은 1층에서 5개, 3층에서 2개 등 사용한 소화기 7개를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불이 난 시각이 이들의 진술보다 5분 가까이 빨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불을 끄기 위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밀양소방서 가곡센터장은 “아침 7시35분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2분31초 만이었다. 하지만 짙은 연기가 건물 밖까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호스를 들고 병원 주출입구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살이 익을 정도로 화염이 분출하고 있었다”고 다급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대책본부는 “119 신고부터 해야 했는데, 자체 진화에 실패하고서야 뒤늦게 신고한 것이 잘못”이라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병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화재 발생 당시 당직근무자들이 어떤 조처를 했는지, 평소 소방안전교육을 제대로 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또 “안타깝게 숨진 의사 1명은 다른 병원 소속으로 이날 세종병원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와있었기 때문에 비상시 대처요령을 잘 몰랐을 것으로 본다. 당직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신고하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이 자체는 불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세종병원 화재사고의 사망자는 29일 현재 의료진 3명, 환자 36명 등 39명으로 늘었다. 현장감식반은 세종병원에서 무단증축된 것으로 이미 드러난 5곳 외에 1층 응급실 휴게공간, 4층 베란다 등 무단증축된 2곳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에 따라 수사본부는 병원 이사장, 원장, 총무과장 등 3명을 출국금지 조처했다. 밀양/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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