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시 내일동 밀양농협장례식장에 차려진 김라희씨 빈소.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입니다. 유족분들 빈소 앞으로 오셔서 김라희씨께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주세요.”
30일 아침 8시40분께 장례지도사가 유족에게 말했다. 남편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정사진을 보던 그는 곧바로 다시 무너지며 목 놓아 울었다. 유족도 따라 흐느껴 울었다. 한 유족이 “이렇게는 못 보낸다”고 가슴을 쳤다.
이날 밀양시 내일동 밀양농협장례식장에 차려진 김라희씨 빈소. 간호조무사 김씨는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당시 2층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구하려다 숨졌다. 그의 꿈은 간호사였다. 간호사가 되려고 한 대학 간호학과에 지원해 진학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남편 이아무개(37)씨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이씨 동생이 “형님 부부는 금실이 좋았다. 불이 난 그날 병원으로 출근한 형수가 형님에게 두 차례 전화해 ‘살려달라’고 했다. 지금 (형님은) 아무 말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 작은아버지도 “지난 추석 때 ‘이제 아기를 가져야 할 때 아니냐’고 물었다. ‘계획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성격이 밝고 애교도 많았다. 집안 분위기를 화사하게 했다. 가슴이 아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남 밀양시 내일동 밀양농협장례식장에 차려진 김라희씨 빈소.
비슷한 시각 밀양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간호사 김점자씨 발인식이 치러졌다. 김씨는 지난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3년 전부터 세종병원 2층 담당 간호사로 일했다. 불이 난 날 어머니께 “석류와 요구르트를 갈아놓았으니 챙겨 드시라”고 말한 뒤 출근했다. 그날 아침 7시30분께 어머니와 통화했던 김씨는 “병원에 불이 났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통화였다. 김씨도 병원 2층에서 환자를 구하려다 연기에 쓰러졌다. 전화를 끊은 김씨 어머니는 곧바로 병원으로 내달렸다. 세종병원 근처 노인회관에 싸늘하게 식은 딸이 있었다.
이날 오전 9시10분께 김점자씨 운구 차량이 밀양농협장례식장 바로 옆에 있는 밀양시 공설 화장장에 도착했다. 김씨 남동생은 “아직 (누나를) 못 보내겠다. 화가 나 견딜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점자씨 운구차 뒤에 김라희씨 운구차가 들어왔다. 유족 가운데 한 명이 “얼굴 한 번만 보고 가라. 불쌍해서 어쩌냐”며 김점자씨 관을 화로로 보내려 하지 않았다. 김점자씨와 김라희씨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자,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유족들은 오열했다. 김점자씨 남동생은 참고 있던 눈물을 터뜨렸다. 김라희씨 친동생도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한 유족은 울다 쓰러져 현장에 있던 119구급대가 근처 병원으로 옮겼다. 유족들은 오열하며 고인들을 배웅했다. 이날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박봉기(98) 할머니도 영면했다. 박 할머니는 가슴막에 물이 차 세종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 사흘을 앞두고 화마로 숨졌다. 유족들은 퇴원하면 가족끼리 모여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유족들은 운구 차량에 박 할머니 관이 실리자 하나같이 흐느꼈다. 박 할머니 손자는 “이제 할아버지 곁에서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세요”라고 말했다.
30일 경남 밀양시 내일동 시 공설 화장장에 도착한 김라희씨 유족.
세종병원 화재 참사 발생 닷새째인 이날 희생자 13명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장례식장 부족으로 빈소를 늦게 차린 의사 민아무개(59)씨 등 희생자 4명의 발인은 31일 진행될 예정이다. 이들 4명의 발인식이 치러지면 세종병원 화재 참사 희생자 장례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30일 세종병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시민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까지 800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밀양시는 다음달 3일 합동분향소가 있는 밀양문화체육회관에서 합동 위령제를 열기로 했다.
밀양/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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