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민들이 27일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일산 킨텍스 전시장 일대에서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한반도 단일기 인간띠잇기’ 행진을 하고 있다. 박경만 기자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접경지역 주민과 실향민, 탈북자들은 온종일 마음이 들떴다.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5도 주민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서해 5도는 연평해전, 대청해전, 연평도 피격, 천안함 침몰 등 잦은 군사적 충돌로 늘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곳이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우리 어민들은 오늘도 평화의 염원을 담아 ‘서해 5도 한반도기’(서해 5도가 포시된 한반도기)를 어선에 달고 조업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남북 어민이 함께 평화롭게 조업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원일 ‘서해5도 생존과 평화를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 간사도 “서해 5도 주민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동안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섬이 되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북에도 잘 전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판문점 근처의 경기도 고양, 파주 등은 온종일 들썩였다. 고양의 시민단체들은 이날 정상회담 프레스센터가 마련된 일산 킨텍스 일대에서 남북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시민 200여명이 참가한 ‘한반도 단일기 인간띠잇기’ 행사를 열었다. 윤주한 ‘통일을 이루는 사람들’ 이사장은 “개성은 당일로 소풍을 다녀올 만큼 가까운 곳이다. 자유롭게 남북을 넘나드는 세상이 속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광지인 임진각도 전국에서 몰려온 수천명의 관광객과 주민들로 내내 북적댔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군 주민들도 이번 정상회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 단절된 동해북부선 연결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이강훈 고성군번영회장은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10년 동안 경제가 위축돼 주민들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드시 금강산 관광 재개라는 성과를 내주길 바란다.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에 대해 수없이 실망하고 낙담해온 실향민들도 이날은 “이번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에 사는 실향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상회담을 생중계하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2살 때 월남한 김진국(78) 청호동노인회장은 “모든 실향민의 소원은 눈감기 전에 고향 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등 희소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처럼 함경도 쪽에서 피난온 실향민들이 많다. 여인찬(87) 이북도민회 부산지구연합회장은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과 비교할 때 분위기가 더 좋은 것 같다. 북한이 대외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것 같다. 남북 정상이 좋은 결과를 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남북 교류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자칫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1만여명의 탈북자 회원을 보유한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사무국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합의를 꼭 이행하자고 말한 것은 와닿았다. 탈북자들로서는 서울-평양만이라도 자유왕래를 해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탈북자는 “남북 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더라도 과연 탈북자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북한에 다녀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정하 박경만 박수혁 김광수 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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