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소나무 표지석의 글씨를 쓴 여태명 원광대 교수가 자신이 쓴 견본 옆에 서 있다. 여태명 교수 제공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해 영광이고, 평화의 길로 가는 데 미력이나마 보태서 가슴이 벅찹니다.”
지난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 심은 소나무 표지석의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씨는 여태명(62·사진) 전북 원광대 교수가 썼다. 그가 평생을 바쳐 개발한 ‘민체’다. 민체는 조선 후기 민중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한 서체다. 문재인·김정은 이름도 민체이고, 직함·날짜는 여러 글씨체들의 조화를 위해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서체를 혼용해서 썼다.
여태명 원광대 교수가 청와대에 보낸 견본 1, 2, 3안. 여태명 교수 제공
정상회담을 6일 앞둔 지난 21일 여 교수는 청와대로부터 표지석 글씨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바로 다음날 3가지 서체로 시안을 보냈다. ‘1안 완판본고체’(글자 끝이 둥근 훈민정음과 글자 끝이 모난 용비어천가를 혼용), ‘2안 완판본필사체’, ‘3안 민체’. 23일 민체로 써달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그는 뜨거운 덩어리가 가슴에서 울컥 나오는 것 같은 감동과 전율을 느끼며 일필휘지로 나갔다.
그는 “개발자로서 내심 민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채택되니 너무 기뻤다. 선택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유롭고 개성있는 민중의 삶이 표현된 글씨체이고 평화·통일을 향한 국민의 염원이 모아진 글씨이기도 해 더욱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한국민족서예인협회장도 맡고 있는 그는 “두 정상이 심은 소나무 표지석 흰 천막을 걷어내면서 글씨체가 세상에 나온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역사적인 표지석 앞에서 평화·번영·통일을 기원하며 기념촬영을 하는 날을 꿈꾼다”고 감동을 전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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