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가 14일 오전 도지사직에 복귀하면서 도청 로비에서 환영하는 공무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허호준 기자
“도민들의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봐요. 과거 공무원 줄세우기로 비판을 받던 사람(우근민 전 지사)과 같이 한배를 타고 선거운동을 하는 게 말이 됩니까? 민주당이 도민의 정서를 못 읽었다고 봐요.”
14일 오전 제주시 연동 한라병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일두(50)씨는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의 참패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제주시 이호동에서 자영업을 하며 민주당원이기도 한 오영태(55)씨도 지역 민심이 돌아서는 과정을 지켜봤다.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분위기가 괜찮았는데 텔레비전 토론회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말하기가 안쓰럽지만 문 후보가 준비가 부족했어요. 당내 갈등도 한몫했고요.”
국회의원과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강세를 보여온 제주지역이지만 이번 제주지사 선거에서는 문대림 민주당 후보가 원희룡 무소속 당선자에게 11.71%포인트 차로 크게 뒤졌다. 문 후보의 자질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 후보는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개발업체 임원 경력과 골프장 명예회원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보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아 여론이 악화했다.
당내 경선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선거 내내 문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경선 경쟁자였던 김우남 전 의원은 선거일 엿새 전인 7일에야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이미 등 돌린 지지자들을 되돌리기엔 무리였다. 김 전 의원의 고향인 제주시 구좌읍에서도 원 후보가 문 후보를 배 이상 차이로 앞섰다.
선거전략도 문 후보 진영이 뒤졌다. 문 후보 쪽은 여당 후보이면서도 텔레비전 방송 연설을 하지 않고 광고만 했다. 인터넷 주요 포털에 광고도 띄우지 않았다. 방송광고는 1분짜리이고, 방송연설은 10분짜리다. 방송 관계자는 “중요한 시기에 시청률이 13%가 넘는 방송연설을 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오후 시청 어울림마당에서 만난 이인영(45·제주시 화북동)씨는 “도전자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참신성과 도덕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문 후보가 해명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선거전략이나 조직도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아무개(45)씨는 “젊은층이 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하지 못하는 등 선거전략에서 너무 밀렸다”고 평가했다.
문 후보 쪽은 “경선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 원 후보는 우근민 전 지사의 지원을 받은 문 후보 쪽을 적폐세력으로 몰았다. 제주참여환경연대 관계자는 “난개발 책임이 있는 우 전 지사 진영이 문 후보 뒤에 있어서 문 후보 손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우 전 지사 쪽 인사들은 원 후보 진영에도 있었지만, 문 후보 쪽은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
원 후보의 ‘인물론’이 먹혔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지지자인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김성주(56)씨는 “문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비서관까지 지내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잘한 것에 욕심낸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인물론에서 밀렸다. 주위에서도 원희룡이 인물은 똑똑하지 않으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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