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군산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남편은 어디있어요?"
17일 발생한 전북 군산 방화 사건 현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구조돼 익산 원광대병원으로 이송된 엄아무개씨는 18일 오전 의식을 회복한 뒤 남편의 안부부터 물었다. 엄씨는 전날 남편 장아무개(47)씨와 남편과 절친한 사이인 또다른 장아무개씨와 모처럼 만나 회포를 풀려고 7080클럽을 찾았다가 변을 당했다. 엄씨와 지인 장씨는 119구조대원에 의해 구조됐지만, 남편은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엄씨의 가족들은 남편이 숨진 사실을 알게되면 더 큰 충격에 빠질 것을 우려해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며 엄씨를 안심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엄씨의 가족 일부는 비보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슬리퍼 차림으로 날밤을 지샜고, 해군으로 군 복무중인 엄씨의 둘째 아들은 미국령 괌에서 비행기 편으로 귀국할 예정이다. 엄씨와 장씨도 화상을 입어 집중 치료를 받기 위해 이날 오후 서울로 옮겨졌다. 엄씨의 큰 아들은 숨진 아버지 장례식 절차로 어머니 곁을 지키지 못했다.
원광대병원에는 엄씨를 포함해 비교적 부상이 심한 피해자 11명이 이송됐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이 병원 응급실 앞에서 기도하며 초조하게 대기했다. 이 가운데 2~3명은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광대병원 관계자는 "일부 환자는 위중한 상태여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한 장미동 일대는 개야도에서 뭍으로 나온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엄씨 부부와 장씨도 개야도 출신이다. 피의자 이아무개(55)씨도 개야도에서 뱃삯을 받고 일하는 선원이다. 같은 섬에 살지만 피해자와 피의자는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 이씨의 동료는 "평소에는 괜찮은데, 술을 마시면 과격해지고 술주정도 심하다. 7~8년전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미혼으로 알려진 이씨는 동거녀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전날 밤 953분께 인화물질이 담긴 담긴 20ℓ짜리 석유통에 불을 붙여 7080클럽 입구에 던져 3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치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씨는 전날 오후 2시께 주인과 술값 시비가 붙은 뒤 앙심을 품고 찾아가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범행 뒤 도주과정에서 화상을 입은 이씨에 대한 치료를 마치는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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