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마련된 취업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전쟁을 피해 이 곳에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18일 오전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 마당의 나무 그늘서 앉아 풀을 뜯으며 쉬고 있던 모하메드 아메드(38)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고등학교 물리 교사로 일하다 지난달 15일 제주에 들어온 그의 제주행은 머나먼 여정이었다. 그는 북예멘에서 남예멘, 수단과 에티오피아, 콜롬보,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에 왔다. “시아파 후티 반군이 장악한 뒤 예멘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어요. 아무 일이라도 해야 먹고 살 텐데…”
비자없이 30일 동안 방문할 수 있는 제주에 예멘 난민들이 올해부터 대거 몰려들고 있다. 지나 15일 기준으로 561명이 입국했고, 이 가운데 549명이 법무부 산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신청을 했다.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있는 이슬람 국가다. 2015년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 후티 반군의 내전이 시작되면서 수많은 예멘인이 세계 도처로 유랑의 길을 떠났다. 현재 제주는 그들이 찾고 있는 ‘약속의 땅’ 가운데 하나다.
예멘인 모하메드가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기자에게 제주도에 들어온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알레 헤잠(26)은 후티 반군이 장악한 타이즈시청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다. 그는 “난민들끼리 소통하는 인터넷 공간에서 제주도가 무사증 입국 지역이란 것을 알게 됐다. 이 소식이 말레이시아에 있는 예멘인들에게 급속도로 퍼지면서 제주로 오게 됐다. 말레이시아에서는 4년 동안 체류하면서 돈을 벌어 예멘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급했다”고 말했다. 제주시내 숙박업소에서 한방에 예멘인 2명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그는 제주도에 들어올 때 갖고 온 미화 1800달러도 모두 소진했다. 그는 “제주도에 들어온 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제서야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알라 헤잠은 무슬림에 대한 우려에 대해 “말레이시아에서는 현재 5만여명의 예멘인이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범죄율은 0%다. 우리는 술과 도박을 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평화적인 종교이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18일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예멘 난민 신청자들을 위한 취업설명회에서 예멘인들이 사회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경북 상주적십자병원에서 온 자원봉사 의료진 앞에 선 이브시 출신 히샴(25)은 오른쪽 발등이 흉터로 얼룩져 있었다. 히샴은 “후티 반군이 도시를 장악한 뒤 전선으로 청년을 몰아넣기 위해 강제징집을 했다. 강제징집을 피하다가 오른쪽 다리에 총알 2발을 맞았다. 외과수술을 받지 못해 여전히 파편이 몸 속에 있다”고 했다. 그의 형제 5명 가운데 1명은 내전의 와중에 실종됐고, 1명은 말레이시아, 다른 2명은 예멘에 있다. 같은 이브시 출신을 전직 경찰관이었던 모하메드(50)는 후투 반군에 장악되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고향에 5남1녀를 남겨두고 지난 2016년 5월 예멘을 떠났다. 그는 “현재로써는 어떤 일을 고를 수가 없다. 아무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멘인 히샴이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총알을 맞은 다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서귀포에서 어선 어업을 하는 홍창희(55)씨는 동료 선주 3명과 함께 선원을 고용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홍씨는 이들에게 “어선을 타 본 일이 있느냐, 처음 뱃일을 할 때는 멀미한다”고 했고, 이들 주위로 몰려든 예멘인들은 “임금은 얼마냐. 쉴 때는 임금을 주지 않느냐. 배를 타고 나가느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예멘에서 축구선수를 하고, 축구코치로 일했던 압도 알리(27)는 “어선을 탈 수 있다”며 데려가달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예멘을 나오면서 남겨둔 아들(4)이 얼굴이 매일 떠오른다고 했다. 이들의 일자리 문제를 논의하는 모습이 예멘인들이 하나 둘 너도나도 모여들면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의 미래에 대해 고오봉 제주도 자치행정과장은 “제주도로서는 갑자기 난민문제가 터져 당혹스럽다. 그러나 난민 신청자들의 생계문제가 급박하기 때문에 제주출입국·관리청과 협의하면서 최대한 지원하고, 인도적 차원의 문제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게 제주도가 ‘약속의 땅’이 될까? 아니면 또다시 유랑의 길을 떠나기 위한 징검다리가 될까?
예멘인들이 18일 오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일손을 모집하기 위해 온 시민 주위로 몰려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