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이스맘(가명) 허호준 기자
“한국 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어요. 우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고, 그런 의견을 가진 한국인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지만 우리가 왜 한국에 오게 됐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30일 밤늦게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단체로 묵고 있는 제주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이스맘(30·가명)은 진지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신문사에서 내전이 일어나기 전에 기자로 활동했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했고, 이미 4권의 소설책을 펴낸 작가인 그는 지난 5월5일 난민 신청을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그에게 한국 사회가 난민에 대해 가진 우려와 반감에 대해 가감없이 물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멘인들은 한국인들의 반대와 우려를 알고 있는가.
=한국인들이 우리를 반대하고 혐오한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한국인들은 우리가 왜 여기 와 있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의견을 가진 한국인들을 존중한다. 한국은 한국인들의 나라이기 때문에 (난민에 대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여기 오게 됐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우리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서 빠져나왔다. 한국의 난민제도 덕분에 이곳에 오게 된 데 대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왜 난민 신청자들 가운데 남성이 훨씬 많은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성차별이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있다.
=난민 신청자 가운데에는 혼자 예멘에서 탈출한 여성도 있다. 내전 발발 이후 후티 반군이 혼자 히잡을 쓰고 외출한 여성을 폭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나 우리(예멘) 문화에서는 여성들이 혼자서 외출할 권리가 있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부 집안의 경우 다른 제도를 갖고 있지만, 이는 그 집안의 문제이지 이슬람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 한국도 집안마다 문화가 있지 않은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의 문제다. 여성과 남성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졌고, 여성을 위한 많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2011년에는 예멘 출신 여성 타우왁쿨 카르만이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을 위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국에 온 것은 여행이 아니다. 이것은 탈출이자 도주다. 생존을 위한 도주다. 지금도 도주 중이나 다름없다. 특히 전쟁 시기에 어떻게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탈출할 수 있겠나. 당신이 안전하게 탈출하고 나서야 가족도 탈출할 수 있다. 우리 문화는 남성이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
-현재 예멘에서는 자유가 제한적인가.
=전쟁 상황에서 어떻게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유가 전혀 없다. 당신이 안전하게 지내려면 당신이 가진 생각을 마음속에만 갖고 있어야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심지어 침묵을 지키더라도 기아, 연료차단, 단속 등의 방법으로 살해할 수도 있다. 지금 예멘에서는 1300만여명이 굶주림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본다.
-여성과 아동들의 상황을 말해달라.
=예멘에서는 13살 이상이면 전쟁터에 끌려간다. 아이들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 그런 일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또다시 미안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공부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후티 반군은 아이들을 학교나 길거리에서 납치했다. 북예멘에서는 이런 상황이 더 악화했다. 남예멘도 상황이 비슷하다. 모든 곳이 살아가는데 어려운 상황이다.
에멘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이스맘(가명) 허호준 기자
-일부 한국인들은 이슬람이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억압적이고 폭력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는 ‘아니다’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종교는 인간에게 평화와 안전과 권리를 가져다줬다. 여성과 남성은 같다. 여성들에게 억압적이라고? 절대 아니다. 이슬람은 평화스러운 종교이고, 평화 애호적인 종교이다. 단지 집안의 문화와 제도 등에 따라 다르다. 여성들은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무슨 일이든 한다. 클럽을 갈 수도 있고, 운전할 수도 있다.
-사실 한국인들은 예멘인들을 모른다.
=이슬람 세계를 제3세계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개념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아랍에서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우리는 다 같은 지구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생각을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멘인들이 최근에 지갑을 주워서 한국 경찰에 갖다 줘서 주인을 찾아줬다. 그런 좋은 일도 했다. 아직 범죄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개방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예멘은 좋은 곳이어서 전쟁이 없었다면 탈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예멘에서는 서로 싸우고 있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싸움터에서 죽지 않는다면 길거리에서 어디에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죽을 것이다. 물류의 중심지였던 호데이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 그곳에 가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우리가 생존을 위해 여기에 온 사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여기 있는 예멘인들은 어떻게 한국전쟁 뒤에 평화를 찾게 됐는지 배우고 싶어한다.
-지금 와 있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관해 얘기해달라.
=나를 포함해 3명의 언론인 출신이 있다.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예멘인 모두와 얘기한 것은 아니어서 개개인의 상황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예멘인들의 수준이나 무슨 공부를 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일부 한국인들은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예멘의 어려움 때문에 탈출한 게 아니라 더 좋은 일자리와 복지를 찾아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나.
=아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금붙이를 물고 태어났다면 아버지나 어머니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로(0)에서 시작하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 어디서 일을 하건 힘들다. 심지어 기자인 당신이 지금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고, 무엇인가를 기사화하겠지만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어디든지 쉬운 일자리는 없다. 사실 예멘인들이 어선을 타는 일에서 많이 실수했는데,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난민이지 노예가 아니다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이렇게 만들었다.
-난민들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해 다른 문화와 동화되는 게 좋은가 아니면 난민 공동체에서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는 게 좋은가.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 중동국가에는 역사가 있다. 그들은 한나라에서 다른 나라고 가면 단체로 생활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미국에 코리아타운이 있고, 전 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준다. 우리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사람도 장소도 몰랐고, 일자리도 없었다. 이제는 많은 예멘인이 일자리를 찾아 흩어져 자립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등 연락은 하고 있다. 이것은 연결고리일 뿐 난민 공동체가 아니다. 단지 연결일 뿐이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가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하하.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16세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인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해달라. 예멘에서는 과거 노키아폰을 샀는데 매우 비싸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갤럭시 노트8을 갖고 있다면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스마트폰은 대부분 100~200달러짜리다.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예멘 사회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가족과도 연락할 수 있다.
-그동안 경험한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대단한 나라다. (그는 주저 없이 여러 번 이를 반복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21세기에 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현대식 사고다. 한국인들이 존경스럽다. 예멘에서도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한다. 개방적이고, 미래를 바꾸며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
예멘에선 정부가 붕괴한 2014년 20여개의 언론사가 문을 닫았고, 이스맘이 근무하던 신문사는 2015년 3월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될 때까지 4개월을 더 버텼다. 후티 반군은 내전이 시작되자 모든 것을 통제했다. 많은 언론인이 납치됐고, 그와 가족처럼 지내며 일하던 한 동료 기자도 납치돼 지금까지 생사를 모른다. 그는 “진실을 말하면 정부와 후티 반군 양쪽으로부터 위협을 받곤 한다. 후티는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은 적으로 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두 차례 후티 반군쪽으로부터 위협을 받았다. 2015년 신문이 아닌 페이스북에 글을 썼는데 이를 빌미로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와 남동생을 전쟁터로 끌고 가겠다며, 침묵을 지키라는 말을 들었고, 두 번째는 직접 살해하거나 납치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스맘은 집을 나와 1년 6개월 정도 숨어지내다 2016년 12월 예멘을 탈출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