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 한겨레DB
경비실 직원이 보여준 비밀번호 기억했다 밤에 침입
관리 엉망인 학교 연구실 허점 노린 철저한 계획 범행
관리 엉망인 학교 연구실 허점 노린 철저한 계획 범행
부산의 특수목적고(특목고) 3학년 ㄱ군은 지난 5월 중순께 학교 연구실에 물건을 두고 나왔다. ㄱ군은 다시 학교로 찾아가서 경비실 직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나이가 많은 경비실 직원은 종이에 적힌 연구실 비밀번호가 잘 보이지 않자 ㄱ군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비밀번호를 물어봤다. ㄱ군은 그 자리에서 4자리로 된 비밀번호들을 외웠다.
ㄱ군은 ㄴ군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고 시험지를 함께 빼돌리자고 제안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둘은 지난달 25일 밤 9시께 국어과목 연구실을 찾아갔다. ㄴ군이 망을 보는 사이 ㄱ군은 외웠던 비밀번호를 눌러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캐비닛 안에 국어 기말시험인 ‘화법과 작문’ 문제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캐비닛 열쇠를 찾았다. 교사들이 사용하는 서랍에 열쇠가 있었다. 서랍 속의 열쇠로 다른 서랍을 열었는데 거기에 다른 열쇠가 있었다. 캐비닛 열쇠였다. ㄱ군은 캐비닛 속의 ‘화법과 작문’ 문제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유유히 빠져나왔다.
ㄱ군은 사흘 뒤인 28일 밤 9시께는 정보과학 연구실에도 들어가 교사가 책상 위에 두었던 열쇠로 캐비닛을 열었다. 휴대전화로 정보과학 기말시험 문제지를 촬영했다. ㄴ군은 정보과학 연구실 앞에서 망을 봤다. 둘은 두 과목의 시험문제지를 공유했다. 둘은 지난 3~4일 화법과 작문, 정보과학 기말시험을 쳤다.
ㄱ군은 4일 밤엔 혼자서 기말시험 수학 답안지가 보관된 수학과목 연구실에 역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문제의 답을 바꾸려다 여의치 않아서 그냥 나왔다.
둘은 더 대담해졌다. 5일 3~4교시엔 물리과목 연구실에도 들어갔다. 시험이 없는 시간에 자습하다가 화장실에 간다며 나왔다. 교사들이 기말시험 감독을 하기 위해 연구실을 비운 허점을 노렸다. 마침 연구실과 캐비닛엔 열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둘은 번갈아 망을 보면서 캐비닛의 답안지를 꺼내 수정했다. ㄱ군은 주관식 답안지를 고치려다 못 고쳤고, ㄴ군은 두 문제를 수정했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던 두 학생의 범행은 실수로 발각됐다. 5일 둘이 학교 컴퓨터를 이용해 범행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는데 ㄱ군이 로그아웃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한 교사가 우연히 이를 발견했고 학교는 즉시 조사에 들어갔다. 학교는 폐회로텔레비전을 돌려서 둘이 연구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다. 학교는 16~17일 학생들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뒤 둘을 퇴학 처분했다.
부산시교육청은 19일 “해당 학교를 감사하고, 부산 내 151개 고교를 방문해 시험지 보관 방법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