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하철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대여소에 시범적으로 비치한 자전거 안전모/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오는 9월부터 시행되는 자전거 안전모 의무 착용을 앞두고 공공자전거를 운영하는 지방정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공자전거에 안전모를 공급할 수는 있으나, 불편과 위생 문제 때문에 공공자전거 이용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국회와 행정안전부의 ‘탁상 입법’이 급증하던 자전거 이용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24일 <한겨레>의 취재 결과, 대전시와 경남 창원시는 안전모를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대전시는 최근 안전모 구매비 9천만원을 추가경정 예산안에 편성했다. 대량 구매 방식으로 개당 1만5천원씩 모두 6천개의 안전모를 사들일 예정이다. 현재 대전에는 ‘타슈’(공공자전거) 2천여대가 비치돼 있다. 창원시도 3만원짜리 안전모 5천개를 사기 위해 추경 예산에 1억5천만원을 편성했다. 창원시가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누비자’는 모두 3932대로 분실과 파손에 대비해 안전모 5천개가 필요하다고 시는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은 시범 사업으로 일부에만 안전모를 도입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일 여의도 지역 ‘따릉이’(공공자전거) 대여소 서른 곳에 시범적으로 안전모 500개를 비치했다. 여의도는 출퇴근자와 나들이객 등으로 따릉이 이용객이 많은 지역이다. 시는 앞으로 한 달 동안 여의도 공공자전거의 안전모 이용률과 분실률, 만족도 등을 조사해 서울 전역의 따릉이 2만대에 모두 안전모를 공급할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시가 시범적으로 비치한 공공자전거 안전모/서울시 제공
1742대의 공공자전거를 운영하는 부산시도 현재까지 485개의 안전모를 비치했고, 전북 전주시도 6개 공공자전거 대여소별로 20~30개의 안전모를 마련해 뒀다. 경기 고양시는 다음 달 초부터 일산호수공원 안 3개 공공자전거 무인 대여소에 안전모 90개를 비치해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반면, 105대의 공공자전거를 운영하는 제주도는 안전모를 이용자 스스로가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모 문제는 공급으로 끝나지 않는다. 안전모는 공공자전거 자체보다도 더 손이 많이 가야 한다. 가장 골칫거리는 위생 문제다. 여름철 폭염 속에서 안전모는 땀에 젖어 악취를 풍기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주 3회 이상 소독하고, 악취가 심한 안전모는 회수해 냄새제거(탈취)를 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는 모두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자전거 안전모가 서울시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바구니에 비치돼 있다./서울시 제공
그러나 이렇게 관리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이용할지는 알 수 없다. 지난 23일 서울 지하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따릉이 대여소에서 만난 이아무개(31)씨는 “여름철 폭염 속에 다른 사람의 땀에 젖은 안전모를 쓰고 싶지 않다. 자전거 바구니에 든 안전모는 꺼내 보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안전모를 쓰지 않고 탈 것이다. 예산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당 1만5천원 이상인 안전모의 분실 우려도 크다. 안전모의 분실을 막으려면 자전거에 연결해야 하는데, 이 경우 연결줄로 인한 사고의 위험이 있다. 창원시 관계자는 “안전모를 자전거에 줄로 연결해보니, 줄이 이용자의 목에 걸리는 사고 우려가 있어, 자전거 앞 바구니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안전모 분실을 막을 뾰족한 방도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설공단 관계자도 “분실을 방지하려면 안전모에 지피에스(GPS·지구상위치시스템)를 달 수 있겠지만, 헬멧값을 고려할 때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안전모 의무 착용으로 인해 자전거 이용자 수가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전모 의무 착용은 국내의 여러 도시가 어렵게 조성한 자전거 타기 붐을 얼어붙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원시 생태교통과 관계자도 “안전모 도입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한 달 이상 고민 중인데,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여소 모습/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이런 문제들 때문에 지방정부에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한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현장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 입법’이라는 것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이 30~40%에 이르는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자전거 이용을 저해할 것을 우려해 안전모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안전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앞으로 보행자들도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이 나오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시민들은 9월28일부터 자전거를 탈 때 안전모를 써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경우에 대한 과태료 부과 등 구체적 제재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위법이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자전거 이용자의 책임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런 경우 자전거 이용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주요인인 자동차 운전자의 책임은 오히려 경감될 가능성이 있다. 또 안전모가 없는 공공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면 지방정부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있다.
김경욱 홍용덕 최상원 송인걸 허호준 박경만 박임근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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