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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도 못 트는 에너지 빈곤층…“부채로 버텨요”

등록 2018-08-01 18:27수정 2018-08-02 10:00

서울가구 10%, 냉방기구 가동 못해
서우시, 선풍기 500대 등 긴급 지원
지난 달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한 주민이 더위에 지쳐 골목길에 누워 있다. 서울시는 냉방을 할 여유가 없는 계층이 서울 전체 가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달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한 주민이 더위에 지쳐 골목길에 누워 있다. 서울시는 냉방을 할 여유가 없는 계층이 서울 전체 가구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학생 이석훈(가명·20)씨는 2016년 서울의 한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생활하던 공간을 떠나 홀로서기를 한 것이다. 시설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법적으로 시설을 떠나야 한다. 대학생 신분의 이씨에게 주거와 일자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강남의 어느 그룹홈에 들어간 이유다. 이씨는 이곳에서 또래 학생 4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 1대에 기대 폭염을 버텨왔다. 날이 무더운 탓에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는 “더워도 너무 더웠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찬물을 몸에 끼얹었다. 하지만 10분만 지나면 또다시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참기 힘든 날에는 에어컨이 있는 친구네로 놀러 갔다”고 그는 말했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김은숙(45·가명)씨는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견뎌왔다. 그의 집은 반지하다. 습도가 높아 흐르는 땀은 마르지 않았고, 집에선 연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김씨에겐 부채가 더위를 쫓는 유일한 도구였다. 더위는 쫓아지지 않았다.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그는 “한 달 생활비도 빠듯한데, 선풍기 살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의 도움으로 이들의 ‘여름나기’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시는 지난달 31일 이씨의 그룹홈에 에어컨을 설치해줬다. 이씨는 “냉방비가 많이 나올까 봐 절약하고 쓰고 있지만,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시는 앞서 지난 6월21일에는 김씨의 집으로 선풍기를 전달했다. 김씨는 사회복지관 앞으로 “선풍기가 있어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고맙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썼다.

서울시가 기록적인 폭염에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추가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시는 오는 3일부터 67개 사회복지관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1200가구에 선풍기 500대와 쿨매트 700세트를 전달한다고 1일 밝혔다. 신일산업과 한화생활건강이 기부한 물품에 시민 후원으로 마련된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 1천만원이 더해진 결과다. 선풍기 없이 힘겨운 여름을 나고 있거나, 안전사고가 우려될 만큼 오래된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빈곤층 중심으로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 6월과 7월에도 서울시는 에너지빈곤층 각각 1만 가구와 2500가구에 선풍기 등 냉방물품을 지원했다.

에너지빈곤층은 냉난방, 취사에 필요한 에너지를 쓰기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이 가구소득의 10% 이상을 넘어가는 저소득 가구를 뜻한다. 비용 부담 때문에 냉난방 기구를 사거나, 가동하기 힘든 이들로 “주로 기초생활수급권자나 차상위 계층이 에너지빈곤층에 속한다”고 서울시는 설명했다. 이런 빈곤층이 서울시 전체 가구의 10.3%가량 되는 것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폭염은 무더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취약계층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250여개 환경·소비자·여성단체로 꾸려진 에너지시민연대가 전국 에너지빈곤층 521가구를 대상으로 지난 6월25일부터 10일 동안 면접조사를 벌여 1일 낸 자료를 보면, ‘폭염으로 건강 이상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복수응답)에 이들 가구주의 58.9%가 어지럼증과 두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호흡곤란과 구역질·구토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각각 9.9%, 11.3%로 나타났다.

에너지빈곤층의 주된 냉방시설은 선풍기다. 이들 가구의 81.2%가 주 냉방시설로 선풍기를 꼽았다. 에어컨이 있는 가구는 17.1%, 다른 냉방기구 없이부채로만 더위를 나는 가구는 1.7%였다. 냉장고가 없는 가구도 5.1%로 집계됐다.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에너지 취약계층은 법적 정의조차 없는 상황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겨울철 난방지원에만 집중된 에너지복지제도를 여름철 냉방지원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정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냉방기기 보급이나 교체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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