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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구급대 동행취재, 홀몸노인 연락두절 신고에 출동했지만…

등록 2018-08-02 05:00수정 2018-08-02 17:13

서울 서대문소방서 구급대 동행 취재
홍제동 출동길엔 숨진 홀몸노인 발견
더위 속 쉴새없이 출동, 순찰 이어져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와 소방구조대원들이 1일 오후 서대문구 홍제동 한 연립주택의 문을 열려 하고 있다. 이 집에서는 한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와 소방구조대원들이 1일 오후 서대문구 홍제동 한 연립주택의 문을 열려 하고 있다. 이 집에서는 한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일 오후 1시32분 서울 서대문소방서에 출동 경보가 울려 퍼졌다. 현장대응단 사무실에서 대기하던 구급대원들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나가 구급차에 올라탔다. 2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구급차가 출발하자 김동현(31) 소방사는 신고 내용을 살폈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연립주택에 혼자 사는 노인이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신고였다. 김 소방사는 “이런 신고가 들어오면 혹시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걱정부터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 돌아가신 분의 주검을 보면 충격이 크다고 고백처럼 말했다. “여름에는 시신의 부패도 심하고 냄새도 많이 난다. 그런 모습들을 본 게 트라우마처럼 남는다.”

신고된 홍제동 연립주택 들머리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냄새가 났다. 한 조를 이룬 구급대원 3명과 함께 마스크를 올려 쓴 뒤 덥고 습한 계단을 급히 올라갔다. 301호 문을 한참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결국 구급대 지원을 나온 소방구조대원이 창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문을 열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바뀌었다. 혼자 살던 노인은 방문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소방사의 우려대로 부패된 상태였다. 노인의 주검 주위엔 파리 떼가 윙윙거렸다. 집 안 공기가 덥고 습했지만 차마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숨진 노인은 60~70대로 추정되며,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고 이웃들과도 교류하지 않았다. 이웃 주민 가운데 누구도 이 노인에게 어떤 병이 있었는지, 가족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구급대는 노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경찰에 주검을 인계한 뒤 20분 만에 현장에서 철수했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힐 예정이다.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 김유선 주임이 1일 오후 남가좌동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 김유선 주임이 1일 오후 남가좌동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요즘 같은 폭염 기간이면 구급대원들은 시원한 소재로 만든 아이스스카프, 얼음팩을 안에 넣은 얼음조끼 등을 항상 준비한다. 그러나 111년 만의 최고 더위 앞에서는 이런 장비들도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이날 오후 1시41분 서울 종로구 송월동 공식관측소의 낮 최고기온은 섭씨 38.8도, 비공식으로는 40도를 넘긴 곳도 있었다.

엄청난 더위에 온열질환뿐 아니라 다른 건강 이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날 구급대원들의 출동은 끊이지 않았다. 낮 12시48분에는 연희파출소에서 “요로결석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구급대원들은 출동 지령이 떨어진 지 3분 만에 연희파출소에 도착했다. 구급 현장을 뛰어다닌 구급대원들의 이마와 얼굴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한 대원은 혼잣말로 “더워, 너무 더워”라고 중얼거렸다.

요로결석 환자를 이송하자마자 구급대원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남가좌동의 교통사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승용차가 길을 건너던 자전거를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자전거 운전자는 얼굴이 가볍게 긁히는 상처를 입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원들이 1일 오후 남가좌동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원들이 1일 오후 남가좌동에서 교통사고 환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구급대원들은 신고에 따른 구급·이송 활동뿐 아니라 폭염 피해를 대비해 ‘폭염 순회’ 활동도 한다. 서대문소방서의 경우, 구급·이송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폭염 취약지’ 몇곳을 순찰한 뒤 복귀했다. 이날 낮 12시께는 홍제천 인근 산책로를 살폈다. 뜨거운 한낮인데도 노인들이 산책을 하거나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유선(37) 소방장은 “가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정자에 누워 계신 노인 온열환자들을 발견한다. 그런 경우엔 깨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음료를 드리거나, 필요한 경우 응급조처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 김동현 소방사(왼쪽 둘째)와 김유선 소방장이 1일 오후 서대문구 연희동 홍제천 옆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주민들의 혈압과 체온을 재는 등 온열 환자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서울 서대문소방서 119구급대 김동현 소방사(왼쪽 둘째)와 김유선 소방장이 1일 오후 서대문구 연희동 홍제천 옆 정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주민들의 혈압과 체온을 재는 등 온열 환자 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구급대원들은 홍제천 산책로 정자에서 얘기를 나누던 노인들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고 체온과 혈압을 검사했다. 김순이(87) 할머니는 체온이 정상보다 1도 정도 높은 37.5도로 나왔다. 대원들이 그에게 찬 이온음료를 권했다. 구급대원들은 온열환자를 대비해 항상 아이스박스에 이온음료와 생리식염수, 알코올 분무기 등을 갖고 다닌다.

김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얘기라도 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구급대원들은 “할머니 상태가 위급하지는 않지만 조심하셔야 한다. 너무 밖에 오래 계시지 말라”고 권유했다. 노인들은 구급대원들에게 연신 “더운데 고생이 너무 많다” “고맙다”며 사탕을 손에 쥐여줬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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