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형철 물개혁포럼 대표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외평리 한강 이포보에서 자신이 농성을 했던 보 기둥을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여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굵은 빗줄기가 내리친 지난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이포보. 환경부가 이달 4일 한강 3개 보 가운데 유일하게 수문 일부를 개방한 곳이다. 그 앞에 선 염형철(50) 물개혁포럼 대표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보 중간의 기둥 하나를 가리켰다.
27m 높이의 그 이포보 기둥은 4대강 사업이 한창이던 2010년 7월22일부터 8월31일까지, 그와 2명의 환경운동가가 올라가 농성을 벌인 곳이다. 당시 그는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었고,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 장동빈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함께 했다. 그들은 태풍과 천둥, 번개의 위험을 겪으며 41일 동안 “4대강을 지켜달라”고 시위를 벌인 뒤 내려왔다. 그런 그들을 기다린 것은 업무방해 혐의 기소와 재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 건설사에서 제기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이었다.
염 대표는 “4대강 사업 뒤에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4대강을 되살리는 운동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8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해 결국 오늘 보 개방을 이끌어냈다. 작은 진전이지만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한강 이포보의 수문이 열림에 따라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이포보 인근에 자갈밭이 드러났다. 여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보 개방 뒤 수위가 1.6m 낮아지면서 이포보의 온전한 형태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낙차를 완만하게 만든 어도는 말라 버렸고, 기슭 곳곳에 자갈과 모래 더미가 드러났다. 의외로 드러난 바닥 면적은 그리 넓지 않았다. 염 대표는 “4대강 사업 당시 바닥을 깊이 파낸데다, 이포보와 여주보 사이 거리가 좁고, 중간에 큰 지천이 없어 모래나 자갈 등이 많이 유입되지 못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포보와 여주보 사이에 있는 양화천 지류에는 보 개방 전 물속에 잠겨 있던 자갈밭이 드러났다. 물이끼 썩은 내가 진동했고, 껍질만 남은 말조개, 다슬기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수문 개방 뒤 환경부는 인력을 투입해 이포보에서 여주보까지 23.4㎞ 구간의 강가에서 약 10만마리의 조개류를 건져 물 쪽으로 옮겼다. 하지만 보 수문을 열어 드러난 땅의 모든 수중 생물을 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한강 이포보 인근 양화천의 둔치. 여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날 이포보 현장을 둘러본 4대강조사·평가단 소속 김범철 강원대 교수(환경융합학부)는 “수생 생물은 수위 변동에 아주 민감하다. 고여 있던 물이 흐르면 이에 적응하지 못한 수중 생물은 자연스럽게 도태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포보는 수문을 전면 개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문 개방 뒤 바닥이 드러난 곳은 전체 강 면적의 20%가량에 불과했다.
김 교수와 염 대표는 보 주변의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을 우려했다. 이포보 등 한강 3개 보 건설로 수위가 높아지자 주변에는 지하수를 사용하는 농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4대강 사업 뒤 정부가 지하수 사용을 권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중으로 설치한 비닐하우스 틈에 지하수를 흘려 보온성을 높이는 수막 농사를 짓고 있다. 한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 3개 보 주변을 조사한 결과, 1500개 동의 수막 농사 시설이 있었다.
26일 오후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한강 이포보 부근에서 백로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여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 농가들은 지하수위가 낮아지면 수막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보 개방을 반대하고 있다. 김 교수는 “수막 농사를 위해 전국 각지에 엄청나게 많은 곳에서 지하수를 뽑아써서 가뭄이 들면 강물과 지하수가 동시에 고갈되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지하수 사용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강유역환경청은 겨울철 수막 농사를 고려해 11월7~13일 사이 이포보 수문을 다시 닫을 계획이다. 염 대표는 “단기 수문 개방으로 수질 개선이나 생태계 복원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이번 이포보 개방은 수위를 낮추는 경우 지하수나 어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 보를 철거하지 않더라도 보 상·하류의 낙차를 줄여 물이 흐를 수 있게 보를 개방하면 점차 수질도, 생태계도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4대강조사·평가단은 이포보 부분개방 뒤 수질과 수생태계 등 11개 분야의 변화를 지켜본 결과에 따라 이후 개방 수위와 기간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전국 16개 보 중 10개 보를 순차적으로 개방해 그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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