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스팔트 농사’로 불리는 쌀값 투쟁에 참여한 농민운동 원로들. 왼쪽부터 문경식 전 전농의장, 서경원 전 국회의원, 배종렬 전 전농의장, 오효열 전 광주농민회장.
“밥 한 공기 230원이 비싸다고들 해싸니. 나 참 환장 허겄어.”
13일 전남 무안군 삼향읍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앞 도로에 트랙터와 화물차를 나눠탄 농민 300여명이 부산하게 모여들었다. 마이크를 잡은 김재욱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광주전남연맹 의장이 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쌀값안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우리가 이럴라고 촛불을 들었습니까. 인자 요런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디, 허는 꼬락서니를 봉께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어라.” 농민들은 ‘밥 한 공기 300원 보장’과 ‘수확기 재고미 방출 중단’이라고 쓴 손팻말을 흔들며 열띤 박수를 보냈다.
전국의 농민들이 일제히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쌀값 투쟁’에 돌입했다. 농민들은 올해 쌀 목표가격이 확정되면 앞으로 5년 동안 농가소득의 윤곽이 나오기 때문에 앞으로 두 달이 중요한 시기라고 보고 있다. 전농은 이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열어 ‘밥 한 공기 300원 쟁취’를 위한 농민투쟁을 선언했다. 15일까지 창원·대전·청주·춘천·전주 등에서도 집권여당을 겨냥한 농민들의 의사표시가 이어진다.
전농은 정부 여당이 지난 8일 쌀 목표가격(80㎏)을 19만6000원으로 책정한 것을 두고 “그들 말대로 물가인상률을 반영한다면 24만원 이상 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2012년 21만7719원을 주장해놓고도 6년 전보다 2만원 뒷걸음질 친 안을 내놓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수확기에 재고미를 5만t 이상 방출하고 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조차 하지 않았던 폭거”라며 재고미 추가방출 중단을 촉구했다.
농민들 요구는 ‘밥 한 공기값 300원 보장’으로 모이고 있다. 임연화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합 의장은 “쌀 목표가격을 24만원으로 책정해야 밥 한 공기(100g)가 300원이 된다. 그래 봐야 커피 한 잔 값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쌀값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0.52%에 그친다는데, 왜들 그리 야박한가”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박형대 민중당 전남농민위원장도 “밥 한 공기 분량의 쌀값은 2013년 219원에서 2016년 162원으로 폭락했다. 올해 234원으로 겨우 회복하는 중이다. 개사료만도 못한 쌀값으로 더는 농민을 울리지 말라”고 가세했다.
광주·전남지역 농민 300여명이 11일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앞 도로에서 집회를 열어 ‘밥 한 공기 300원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야당은 쌀 목표가격이 22만~24만원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은 세계무역기구가 인정한 보조금 상한액을 고려할 때 22만~23만원은 가능하다는 태도다. 민주평화당은 24만5000원을 제시했다. 2012~2017년 적용된 정부의 쌀 목표가격은 18만8000원이었다.
정부는 이번에도 국민경제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쌀값을 적정선에서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이 공급과잉 상황임에도 2019년도 쌀 목표가격은 물가상승률보다 2000원 더 높게 책정했다. 목표가격이 과도하게 높아지면, 단기적으로 농가에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2016년처럼 쌀값이 하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안/글·사진 안관옥 기자,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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