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부춘마을 밀밭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제공
“지하에 계신 백남기 형님이 인자 한시름 놓으시겠구먼요.”
전남 보성의 농민 권용식(54)씨는 “망해가는 우리밀 농사에 단비가 내렸다. 겨우 형님을 볼 면목이 생겼다”고 16일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우리밀 수매제를 부활한다는 소식을 최근 농민단체에서 들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백씨였다”고 그는 말했다. 누구보다 우리밀을 애지중지했던 사람이 바로 백씨였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백씨가 쓰러진 뒤 3년 넘게 형님의 밀밭 2만㎡를 지켜왔다. 보성 웅치의 백씨 밀밭엔 올해도 어김없이 가늘고 연약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내년 예산에 우리밀 수매비축비 100억원을 확보했다. 이 돈으로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우리밀을 수매하기로 했다. 1983년을 끝으로 36년 동안 중단됐던 우리밀 수매가 부활하는 것이다. 1980년대 수매를 중단하면서 우리밀 자급률은 30~40%에서 1~2%로 가파르게 떨어졌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매비축은 정부가 원하는 가격에 사서 특정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생산기반을 확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제공
전국의 우리밀 생산농가는 2000~3000 농가로 추산된다. 한 해 평균 2만 헥타르(㏊)에서 4만톤(t)가량을 생산한다. 자급률이 2% 미만이어서 식용으로 200만톤, 사료로 200만톤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밀수입이 늘면서 2010년대 들어 ‘우리밀살리기운동’이 펼쳐졌다. 반짝 관심이 높아졌지만 2017년부터는 재고가 쌓이면서 2018년산은 2만4115톤(자급률 0.8%)으로 급감하는 등 포기하는 농가가 다시 속출했다.
지난해 후배농민들이 백남기 농민의 밀밭에서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성군농민회 제공
농식품부는 지난 3월 농업·농촌발전계획을 통해 우리밀 자급률을 9.9%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2012~2016년 0.9~1.8%에 머문 자급률 높이기 위해 생산기반을 다지고, 판로 구축과 정부 수매 등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수매비축 예산은 2017년산 재고밀 1만여톤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데 우선 쓰인다. 재고밀이 사라지면 생산량이 줄어든 2019년산은 시장에서 수급이 가능해진다. 천익출(71) 우리밀농협조합장은 “밀은 11월 파종 이후 설 이후 웃거름하고 6월에 수확하면 된다. 벼농사에 견줘 간단하다. 평균 가격은 40㎏ 알곡 기준으로 밀이 5만원, 쌀이 3만5000원 수준이어서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전했다.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밀 소비량이 한해 32㎏으로 쌀의 절반이라며 자급률을 더 높이라고 촉구했다. 일본의 경우는 식량 안보를 위해 자급률을 15~20%로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최강은(55)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은 “정부가 수확기에 공공비축을 시행하고, 학교·군대 공동급식용 납품과 식당·빵집의 원산지 표시 의무화를 도입하면 자급률이 20%를 넘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