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5월7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인천분실장이 경기도경찰국장, 인천지검장에 보낸 전언통신문 ’5.3 인천소요사태 수사 조정’ 자료를 보면, 인천 5.3민주항쟁을 ‘인천소요사태’라고 규정하고, 소요의 배후 지령자와 불순단체 간부 및 연계조직을 발본색원 의법처리 차원에서 수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규모 시위였던 ‘인천5·3민주항쟁’(이른바 인천 5·3시위사건)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이 직접 지휘·조정한 사실이 사건 발생 33년만에 처음으로 드러났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받은 이 사건 기록물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3일 이같이 발표했다. 이 사건 자료는 사건 발생 33년 만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인천5·3민주항쟁은 1986년 5월3일 인천 미추홀구 주안역 인근 인천시민회관 앞 광장(현 시민공원역 일대)에서 수도권 지역 시민단체, 대학생, 노동자 등이 군부독재 타도, 직선제 개선 등을 요구한 시위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운동이었다. 당시 검찰은 이 시위를 좌경용공 세력에 의한 조직적인 체제 전복 기도로 단정, 형법 115조 소요죄를 적용해 129명을 구속하고 60명을 지명수배했다.
사업회는 당시 경기도경찰국이 생산한 ‘시위사건 종합 수사 상황’, ‘종합수사보고’, ‘피의자에 대한 수사 경위보고’, ‘수사지휘품신’ 등 3100여 쪽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보면, 당시 안기부는 ‘5.3 인천소요사태’라고 이 사건 명칭을 짓고, 대공방침 지시, 구속 대상 선정, 훈방자 결정 등 모든 것을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지휘했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할 수사기관(안기부)이 도리어 검찰을 지휘한 것이다.
기록물에서 발견된 ‘구속 수사 통보’ 문건에는 안기부 인천분실의 위장 명의인 ‘인화공사’가 경기도경찰국에 시위 관련 구속 수사 대상자를 지목해 통보했다. 또한 경기도경찰국의 ‘5·3 인천 시위관련자 수사 상황보고’ 자료에는 시위 참여자에 대해 ‘안기부, 검찰 합심으로 훈방의견으로 안기부 본부에 조정 중’이라는 내용도 있다. 아울러 경기도경찰국 ‘구속피의자 신병 인도 상황’ 자료에는 구속 수감된 사람에 대한 교도소 내 접견 상황 비밀 녹취 등 당시 의혹으로 제기된 불법적인 경찰 수사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전두환 정권은 ‘인천5·3민주항쟁’을 정국 운영의 반성점으로 삼기보다는, 위기에 처한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86년 6월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치사 사건 등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효가 지났다 하더라도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안기부의 수사 조정권 등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고문 피해자 등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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