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47년 동안 ‘실종’(행방불명)이라던 6·25전쟁 참전 전사자 박종희 상사를 유족이 직접 국립서울현충원을 돌며 나흘 만에 묘비를 찾았다. 묘비번호 ‘8095’로 기억되던 그는 전사한 지 47년 만인 1999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박학술(82)씨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사촌형 박종희 상사를 다시 만난 것은 1999년 6월의 일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4만여개에 이르는 묘비 사이를 꼬박 나흘 동안 헤맨 뒤였다. 박 상사는 1952년 6월12일 강원도 인제군 서화지구에서 북한군과 교전 중 총상을 입어 전사했다. 박씨의 가족들은 휴전 뒤 집에 돌아오지 않은 박 상사의 생사라도 알려달라며 국방부와 군부대 등을 찾아다녔지만, ‘실종’(행방불명)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 세월, 정부와 군이 실종이라고 한 전사자를 가족들이 현충원에서 찾은 것이다. 박씨는 “군에 사촌형의 행방을 찾아달라 요청하면 북한에 갔는지, 탈영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등 모욕적인 언사만 돌아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 상사는 1957년 10월5일 이곳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박 상사의 병적기록부엔 삼촌(작은아버지)의 이름과 그의 집 주소가 등록돼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되면서 박 상사는 아홉살 무렵부터 삼촌 댁인 박씨의 집에서 생활했다. 현충원의 영현카드에도 이런 정보들이 담겨 있었지만, 정작 그의 죽음은 박씨 가족에게 통보되지 않았다.
1999년 7월 군으로부터 전사확인서를 받은 박씨는 인천보훈지청에 전사자에 대한 국가유공자등록을 신청했지만 반려 처분됐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상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은 직계가족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행방불명이던 박 상사의 친아버지를 비롯해 뿔뿔이 흩어져 살던 박 상사의 형과 남동생이 1970~80년대 모두 숨지고 남은 가족은 없었다.
6·25전쟁 참전 전사자 박종희 상사의 유족은 박 상사가 전사한 지 47년 만에 전사 통지서를 받아 사망신고했다.
전사자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데 만족하며 살던 박씨는 2017년 11월 인천보훈지청으로부터 ‘전사자에 대한 국가유공자등록 신청을 다시 하라’는 취지의 통지문을 받았다. 2016년 5월 국가유공자법 개정으로 직계 유족이 없더라도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국가유공자로 등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상사는 전사한 지 66년 만인 지난해 4월 국가유공자(전몰군경)로 등록됐다. 하지만 보훈처는 ‘직계가족이 없어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은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문을 박씨에게 보냈다. 직계가족이 아닌 친인척은 유족 또는 가족의 범위에 들지 않아 유족연금 등을 받을 수 있는 유족으로 등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천보훈지청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법 제5조에 따른 배우자나 직계가족, 성년인 직계비속이 없는 조부모 등에 해당되지 않아 유족 등록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직계가족이 없는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박씨는 “형(박 상사)의 직계가족은 물론 양자로 들여 키운 양부모 모두 형의 생사조차 모르고 돌아가셨다”며 “국가가 현충원에 안장된 전사자를 수십년 동안 행불자로 만들어놓더니, 이제는 사실상 가족의 유족 등록까지 막느냐”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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