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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여전히 문제적인 주민등록번호, 꼭 써야 할까요?

등록 2019-12-20 19:44수정 2019-12-21 02:3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전국2팀에서 행정안전부와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 등을 출입하는 김규원 기자입니다. ‘친절한 기자’ 쓴 지가 꽤 오래됐는데요. 토요판팀 에디터의 요청으로 오랜만에 기회를 얻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주민등록번호(이하 주민번호) 없이 살 수 있을까?’입니다. 지난 17일 행정안전부는 2020년 10월부터 발급·변경·정정되는 주민번호에서 출신지 표시를 삭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쓰는 13개 숫자의 주민번호에는 생년월일과 성별, 출신지 등 세 가지 정보가 표시됩니다. 생년월일은 1~6번째, 성별은 7번째, 출신지는 8~11번째 숫자에 나타납니다. 그다음 12번째는 등록 순서, 13번째는 검증 번호라고 합니다.

주민번호에서 출신지 표시를 삭제하는 이유는 지역 차별의 근거로 악용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8년 9월 경기도 부천의 한 편의점 주인은 구인 광고에서 주민번호 8~9번째 숫자를 거론하며 특정 지역 출신을 뽑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편의점은 시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또 이 출신지 정보는 국내에 정착한 북한 출신자들에게도 설움을 줬습니다. 이들의 출신지 표시 숫자가 모두 같았기 때문이죠. 이 숫자는 이들이 적응 교육을 받는 기관이 위치한 한 지역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이 숫자가 차별의 근거가 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2009년 정부는 관련 법률을 개정해 북한 출신자들의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했습니다.

이런 논란이 이어지면서 결국 정부가 출신지 정보를 삭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대신 8~13번째 숫자는 아무 의미 없는 임의번호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존에 주민번호를 받은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습니다. 2020년 10월부터 출생이나 국적 취득으로 주민번호를 새로 받거나, 범죄 피해 등으로 변경하거나, 잘못 만들어져 정정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런데 이번 행정안전부의 개선 조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먼저 유신 독재 시절에 만들어진 강제적이고 획일적인 주민번호 제도가 계속 유지돼야 하는가 하는 비판입니다. 전문가들은 주민번호의 강제성과 중심성을 깨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세계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모든 시민에게 강제로 별도의 개인식별번호를 매기고, 대부분의 신분 확인이나 행정 행위 때 이 번호를 요구하는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개인 확인을 위해 별도의 개인식별번호를 만들지 않고 사회보장번호, 운전면허번호, 여권번호 등을 사용합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캐나다는 별도의 개인식별번호가 없이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번호를 사용합니다. 프랑스엔 별도의 개인식별번호가 있으나, 이것도 주로 사회보장 목적으로 사용됩니다. 또 프랑스엔 국가신분증도 있는데, 이것은 선택적이고 갱신 때마다 번호도 바뀝니다. 일본도 2016년부터 ‘마이 넘버’라는 별도의 개인식별번호를 도입했는데, 강제성이 없어서 2017년 8월까지 카드 발급률은 9.6%에 불과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서채완 변호사는 “한국의 주민번호는 거의 모든 개인 정보와 연계돼 있고, 그 중심에 있다. 이런 강력한 주민번호가 아니라 행정 목적별로 서로 다른 번호를 사용하는 것이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훨씬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둘째로 전문가들은 주민번호에 생년월일이나 성별 등 개인 정보를 담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주민번호만으로도 그 사람의 핵심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행정안전부의 의뢰를 받아 ‘주민등록제도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를 낸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나이와 성별은 상업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고, 차별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모두 임의번호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는 주민번호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거나 모두 임의번호로 바꾸는 데 난색을 보입니다. 서승우 행정안전부 지방행정정책관은 “주민번호를 근간으로 한 의료·금융 정보 시스템을 바꾸려면 11조원의 비용이 든다”며 “그동안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한 결과, 주민번호는 일부 역기능이 있지만 순기능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개인 확인을 위해 오직 주민번호만을 써야 할까요? 주민번호 대신 운전면허번호나 여권번호, 건강보험번호를 사용하면 안 될까요?

김규원 전국2팀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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