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박범계 법무부 장관(가운데)이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의 철거건물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현황을 설명 듣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형사정책의 중심이 이제는 사람의 신체·생명의 안전,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재해·시민재해 쪽에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참사는 바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가 결합된 참사인 것 같다.”
11일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며 시내버스를 덮쳐 17명이 숨지거나 다친 광주 동구 학동 사고 현장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박 장관은 이 사고를 지난 1월 진통 끝에 통과돼 내년 1월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과 바로 연관 지어 말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 중이었더라도 이번 사건에 적용되기는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붕괴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이 규정하는 ‘중대산업재해’나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하는데 이번 사건은 피해자들이 노무를 제공하다 숨지거나 다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하는지가 남는데, 국토교통부 쪽은 11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아직 시행령 제정 작업중”이라며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현행 법률 규정만으로는 이번 사건을 중대시민재해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률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재해’ 가운데 1명 이상 숨지거나 10명 이상이 질병 또는 부상을 입은 재해를 중대시민재해로 정의한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버스라는 ‘공중교통수단’을 타고 가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버스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붕괴된 ‘건물’이나 버스가 운행했던 도로를 ‘공중이용시설’로 볼 수 있을지도 애매하다. 공중이용시설은 터미널·병원·영화관·체육시설·식당 등과 같은 ‘다중이용시설’과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시설물 등 가운데 대통령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시설물안전법의 ‘시설물’은 교량·터널·항만·댐·건축물 등 구조물과 이에 딸린 시설이나 고층건물, ‘재난의 예방을 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행정기관장이 고시한 건물이 해당한다. 하지만 철거중인 건물을 다중이용시설로 보기는 어렵고, 사고가 도로 위에서 발생했긴 했지만 도로관리의 결함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박 장관 발언과 달리, 법률 조문을 따져봤을 때 이번 사고를 중대재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하여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등을 처벌”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지만, 이 법률을 통해 시행사인 현대산업개발 등의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앞서 언급한 공중이용시설 이외에도 “재해 발생 때 생명·신체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장소”를 포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어, 시행령 내용에 관심이 쏠린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실장은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붕괴돼 인근 지역에 피해를 준 경우에도 분명히 원청 건설회사의 안전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법률 규정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며 “중대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중대시민재해에서도 원청의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시행령을 제대로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을 했던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도 “법안 논의 과정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로, 시행령 제정 때 공중이용시설 규정과 사업주 의무 규정에 해당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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