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관계자가 20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일어난 아르곤 가스 질식사고 현장에서 피해자가 발견됐던 상황을 재현한 모습.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
전남 영암군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40대 하청노동자가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올해 삼호중공업에서 발생한 세 번째 사망사고다.
29일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전남지부와 유족 등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20일 오후 4시께 현대삼호중공업 2독 탱크 바닥에서 하청노동자 정아무개(48)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취부사(부품을 용접 전 배치하는 일)인 정씨는 당시 20m 위에서 배관 용접 작업을 하던 용접사가 ‘아르곤 가스 용량이 부족하다. 가스 게이지를 더 틀어달라’고 하자 탱크 바닥으로 내려갔다. 용접사는 이날 정씨가 30여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바닥으로 내려갔고 쓰러진 정씨를 발견했다. 정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같은 날 오후 5시10분께 사망판정을 받았다.
노조는 정씨가 가로·세로 각 1.5m, 높이 80㎝의 파이프 구조물 하부에서 발견됐고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정씨가 파이프 구조물 하부에 들어갔다가 아르곤 가스 누출에 따른 산소결핍으로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르곤 가스 호스와 배관 사이를 밀봉한 종이테이프가 헐거워져 있었고, 사고 전 용접사가 ‘가스 용량이 부족하다’고 말한 점을 토대로 가스 누출 가능성이 크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이후 지난 22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한 부검결과에서도 정씨의 개인적 질환은 확인되지 않았고, 숨진 정씨 안구에서는 질식의 주요 반응인 일혈점(점 같은 작은 출혈)이 보였다. 아르곤 가스는 무색, 무취로 감지기가 없으면 누출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공기보다 무겁다.
노조는 지난 28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중대재해는 밀폐작업에 따른 산업안전보건법과 작업표준서를 지키지 않고 작업하게 한 현대삼호중공업 원하청 사용자의 책임”이라며 “사용자는 밀폐공간의 ‘적정공기’ 유지를 위해 환기하고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 측정을 제대로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사고 배경은 조선업종의 고질적 병폐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위험의 외주화”라며 “고용노동부는 밀폐공간의 아르곤 가스 용접작업에 대해서 모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환기장치 설치, 모든 작업자에 대한 산소농도 측정기 지급, 바닥 측정 방식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인의 동생은 “세 자녀가 배 만드는 일을 했던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원청인 현대삼호중공업과 다른 기관들이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편 삼호중공업에서는 올해 1월 파워공(그라인더로 녹 등을 제거하는 노동자)으로 일하던 하청노동자가 송기마스크(머리 전체를 덮는 외부 공기 공급장치)를 착용하고 일하던 중 의식을 잃었고 뇌사판정 뒤 2주 만에 숨졌다. 8월에는 하청노동자가 탱크 용접 뒤 공기누설 여부를 확인하다 날아온 철판에 맞아 숨졌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