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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민주화 정신 깃든 ‘교회’ 철거한다니…목숨 걸고 지켜야죠”

등록 2021-07-07 19:45수정 2021-07-08 02:03

칠순 넘어 16일째 단식중 김정택 목사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투쟁’ 나서
범시민대책위원회 구성 13일 기자회견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요구하며 지난 6월22일부터 16일째 단식투쟁 중인 김정택 목사. 사진 이정하 기자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요구하며 지난 6월22일부터 16일째 단식투쟁 중인 김정택 목사. 사진 이정하 기자

인천지역 노동·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품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인천산선·현 미문의 일꾼교회)의 존치를 요구하며 교회 예배당에서 16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정택(72) 목사를 만난 것은 의외의 장소에서였다.

지난 6일 오전 그는 인천시청 앞에서 열린 `농어민 공익수당 지급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장에 있었다. 가만히 서만 있어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더위 속에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티고 있었다. 인천시친환경농업협회 회장인 그는 1996년 강화로 귀농해 농군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달 22일부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가 1984년~86년까지 4대 총무로 몸담았던 ‘인천도시산업선교회’가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철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인천산선은 인천지역 노동운동과 민주화의 역사를 품은 문화유산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존치를 요구해 왔지만, 동구청과 인천시가 이를 무시하고 철거를 강행하고 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단식투쟁을 하게 됐다.”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계획이 포함된 ‘동구 화수화평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교회 터에 기념 표지석을 세우는 등의 방식으로 교회 쪽과 협의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표지석만 세우고 결국 교회는 철거한다는 것이다. 동구 화수화평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은 화평동 1-1번지 일대 18만998㎡에 지하 3층∼지상 40층 규모의 아파트 2986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1961년 미국 선교사 조지 오글 목사가 설립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78년 쟁의 중인 노조 조합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동일방직 사건’ 때 여성노동자들이 피신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오글 목사는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진실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추방되는 등 민주화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대한민국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인천시친환경농업협회장도 맡고 있는 김정택(앞줄 왼쪽 셋째) 목사가 단식 15일째인 지난 6일 인천시청 앞에서 열린 ’농어민공익수당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을 질끔 감은 채 버티고 서 있다. 사진 이정하 기자
인천시친환경농업협회장도 맡고 있는 김정택(앞줄 왼쪽 셋째) 목사가 단식 15일째인 지난 6일 인천시청 앞에서 열린 ’농어민공익수당 조례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눈을 질끔 감은 채 버티고 서 있다. 사진 이정하 기자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보존협의회는 지난 5일 선교회 철거 결정을 무효화하고 인가고시 연기와 도시계획위원회 재심의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시에 제출했다. 김 목사는 “교회에서 1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쌍우물’(화도진 병사들 식수용 2개의 우물)은 보존하면서 이 땅의 노동자들과 함께 민주화를 일궈온 교회는 없애라는 행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희생으로 이룬 민주화 정신에 대한 모독이자 노동의 숭엄한 가치를 재개발 이익에 봉헌한 허인환 동구청장과 박남춘 인천시장은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한 없는 단식에도 굳은 결의를 보였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힘겹지만, 인천시가 도시계획위의 결정을 무효로 하기 전까진 단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수많은 교회 중 작은 하나의 교회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교회는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깃든 공간이다. 인천의 대표적 민주화운동 공간으로 꼽히던 인천가톨릭회관이 철거된 상황에서 인천산선까지 잃는 아픔을 더는 겪지 않게 하겠다.”

안재웅(오른쪽 넷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본부 이사장, 김영주(오른쪽 셋째)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를 비롯한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지난 2일 미문의 일꾼교회를 방문해 단식중인 김정택(맨 가운데) 목사를 지지·응원했다.
안재웅(오른쪽 넷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본부 이사장, 김영주(오른쪽 셋째)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를 비롯한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지난 2일 미문의 일꾼교회를 방문해 단식중인 김정택(맨 가운데) 목사를 지지·응원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생명평화포럼·생명평화기독연대·배다리위원회·스페이스빔·인천주거복지센터·전국셔틀버스노동조합 인천지부연대·노동희망발전소 등도 5일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는 13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도시계획위의 승인 철회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도 6일 성명을 내 “인천시는 인천의 자랑스러운 기독교 역사 유산이자 민주화운동 유산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존치하라”고 촉구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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