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 인천지역 34개 시민사회단체가 23일 시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인천시는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으로 희생된 원주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에 ‘미군 폭격’의 사실을 명시하라”고 촉구했다.
인천시가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월미도 폭격에 희생된 원주민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울 위령비 비문에서 희생의 원인이 된 ‘미군 폭격’이란 내용을 빼려 해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 등 인천지역 34개 시민사회단체는 23일 시청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인천시가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으로 희생된 원주민을 위로하는 위령비에 새길 문구에서 미군을 의도적으로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미군의 폭격으로 주민이 희생됐다고 규명한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라며 “인천시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도록 위령비 비문에 ‘미군 폭격에 희생된 원주민’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미 해병대 항공기는 인천상륙작전을 닷새 앞둔 1950년 9월10일 월미도 일대를 폭격해 주민 100여명이 희생됐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런 사실을 규명하면서 위령사업 지원을 권고했고, 인천시는 13년 만인 다음달 중 인천 월미공원에 위령비를 제막하기로 했다.
미군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원주민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비’에 세길 문구 수정안.
그러나 인천시가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와 함께 작성한 위령비 비문에는 ‘미군 폭격’ 내용이 제외됐다. 시는 ‘이 위령비는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100여명의 월미도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삶의 터전이 전쟁의 전략적 요충지가 됨에 따라 혹독한 피해를 본 분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전쟁의 실상을 후대에 알리고자 건립하였다’라는 비문을 제안했다. 100여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낸 주체가 빠진 것이다.
시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이어지자 ‘1950년 6·25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에 의한 전쟁을 조기 종식하기 위해 실시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중 월미도에서 희생된 민간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권고에 따라 인천시와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로 다시 수정해 제시했다. 수정안 역시 희생을 촉발한 ‘미군 폭격’은 없었다.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는 “충북 노근리 미군의 양민학살사건 등 전국에 세워진 미군 폭격 사건 위령비에 모두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 문구가 포함돼 있다”며 “인천시가 수정 제안한 위령비는 오히려 인천상륙작전의 전승을 기리는 문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유족 쪽과 협의해 정한 사안이지만, 반대 의견도 있는 만큼 제막식 일정을 늦추고 좀더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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