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농촌기본소득 시범마을로 선정된 연천군 청산면. 육군 5사단 신병교육대가 있는 궁평리 주변은 상가 건물 및 전원주택 신축이 잇따르고 있다. 이정하 기자
“영감이랑 둘 사는데, 원래 받던 기초연금에다 기본소득인지 뭔지 새로 얹어 준다는 30만원 더하면 생활비로 충분하지, 아무렴.”
지난 10일 오전 연천군의 관문 청산면 초성1리 경원선 초성리역. 역사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이동순(82) 할머니는 ‘농촌기본소득’에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청산면은 경기도가 기본소득 정책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사회실험’ 시범마을로 선정한 곳이다. 버스를 기다리던 또 다른 할머니도 “죽어가던 동네가 농촌기본소득 나눠주면 다시 활기가 돌지 않겠느냐”고 거들었다.
시범사업 5년 동안 모두 300억원이 청산면에 풀린다. 재원은 도와 군이 각각 7 대 3으로 나눠 부담한다. 청산면에 주소를 두고, 실거주가 확인된 주민이 수혜 대상이다. 매달 1인당 15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받는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해 12월 전국 평균 인구(4167명)보다 적은 면 가운데 공모에 응한 4곳을 상대로 공개 추첨을 해 청산면을 시범마을로 정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농촌기본소득이 지급도 되기 전에 청산면 인구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 자료를 보면, 이달 1일 현재 청산면 주민등록 인구는 4148명으로 지난해 12월 말(3895명)보다 253명 늘었다. 신규 전입자 70%가량이 연천군 밖에서 이주한 것으로 경기도는 파악한다. 2010년 이후 줄곧 인구 감소세를 보이던 흐름이 시범사업 마을 지정 전후로 반전된 셈이다.
청산면 초성2리에 있는 초성초등학교 주변에 들어선 상가 가운데 상당수는 문을 닫았거나 폐업한 상태다. 인적도 드물었다. 이정하 기자
최용식 청산면 행정복지센터 산업팀장은 <한겨레>에 “주소를 이전하고 거주하면 농촌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는 터라 인구 유입이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유입 인구 상당수는 고령층이다. 나혜정 청산면 이장단협의회 회장(초성3리 이장)은 “60대 이상 외지인 유입이 많다”고 했다. 초성초등학교(청산면 소재) 박원경 보건교사도 “전학생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물론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를 농촌기본소득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초성리역 이전 등 교통입지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애초 농촌기본소득은 4월부터 지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급 시점이 2개월가량 밀렸다. 3월 대통령선거와 6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촌기본소득 홍보 활동이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우려에 따른 조처였다. 미지급분(2개월치) 포함 1인당 45만원 상당의 지역화폐가 6월 안에 지급된다.
물론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현금이 아닌 사용처가 청산면으로 제한된 지역화폐로 지급된다는 이유에서다. 사행성·유흥업소를 빼고 지역화폐를 쓸 수 있는 곳은 4월 말 현재 190여곳이다. 슈퍼를 운영하는 송미룡(67·여)씨는 “홀몸노인 가구가 대부분인 작은 농촌마을인데다 사용처도 적어서 지역화폐가 얼마나 쓰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덕천 군 농업정책과장은 “1년차 시범사업 시행 뒤 사용처 확대 등을 도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면에 없는 병·의원이나 약국, 보습학원은 연천군 전체로 지역화폐 사용처를 확대하기로 했다.
일부에선 농촌기본소득 사업을 추진했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문무 도 농업정책과 농촌소득팀장은 “행정 신뢰도 측면에서 예정대로 (시범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단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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