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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살인’ 공판서 ‘가스라이팅 살인죄’ 놓고 치열한 설전

등록 2022-08-26 20:00수정 2022-08-26 21:10

‘계곡 살인’ 11차 공판
“영국에는 가스라이팅 살인 인정 사례 있어”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조현수(30)씨가 지난 4월16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조현수(30)씨가 지난 4월16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통해 상대를 숨지게 한 이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재판이 진행 중인 ‘계곡 살인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25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는 계곡 살인 사건 11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이지연 인천대 창의인재개발학과 교수가 검찰 쪽 증인으로 참석했다. 지난 2019년 6월30일 수영을 하지 못하는 윤아무개씨가 계곡에 뛰어들어 숨진 건 윤씨의 마음을 이은해·조현수가 지배했기 때문이며, 이씨와 조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두 교수가 재판에 등장한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수영을 못하는 윤씨가 계곡으로 뛰어든 과정에) 강요된 흔적이 있다면 (윤씨가) 정서적 학대에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강요된 행위가 일정 기간 지속됐다면 가스라이팅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영국에는 (유사 사건에서) 살인으로 (유죄를) 선고한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윤씨가) 누나한테 호소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는데도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는 정신적 공황 상태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지연 교수는 “(윤씨가 이은해를) 너무 좋아했다. (이은해를 위해 윤씨가) 최선을 다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소진되고 심리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던 것 같다”며 “4600원짜리 로프를 사서 죽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는 말을 (윤씨가) 했다는 증거를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비전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터널 비전’은 차량 운전자가 터널을 지날 때 끝에 있는 흰 빛만 보이는 것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길만이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여기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은해·조현수 쪽 변호인은 윤씨의 자유의사를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특히 변호인은 “9년에 이르는 교제 기간 중 사건 전후에 있던 일부 기록을 가지고 윤씨를 진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한때 변호인과 이수정 교수의 치열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입장에서 변론하더라도 증인 신문임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질문하라”고 둘 사이를 중재했다. 12차 공판은 오는 30일 열린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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