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조현수(30)씨가 지난 4월16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통해 상대를 숨지게 한 이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재판이 진행 중인
‘계곡 살인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25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는 계곡 살인 사건 11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이지연 인천대 창의인재개발학과 교수가 검찰 쪽 증인으로 참석했다. 지난 2019년 6월30일 수영을 하지 못하는 윤아무개씨가 계곡에 뛰어들어 숨진 건 윤씨의 마음을 이은해·조현수가 지배했기 때문이며, 이씨와 조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기 위해 범죄심리학 전문가인 두 교수가 재판에 등장한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수영을 못하는 윤씨가 계곡으로 뛰어든 과정에) 강요된 흔적이 있다면 (윤씨가) 정서적 학대에 놓여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강요된 행위가 일정 기간 지속됐다면 가스라이팅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며 “영국에는 (유사 사건에서) 살인으로 (유죄를) 선고한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어 “(윤씨가) 누나한테 호소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는데도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는 정신적 공황 상태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지연 교수는 “(윤씨가 이은해를) 너무 좋아했다. (이은해를 위해 윤씨가) 최선을 다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소진되고 심리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던 것 같다”며 “4600원짜리 로프를 사서 죽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는 말을 (윤씨가) 했다는 증거를 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처럼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비전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터널 비전’은 차량 운전자가 터널을 지날 때 끝에 있는 흰 빛만 보이는 것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길만이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여기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이은해·조현수 쪽 변호인은 윤씨의 자유의사를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맞섰다. 특히 변호인은 “9년에 이르는 교제 기간 중 사건 전후에 있던 일부 기록을 가지고 윤씨를 진단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변호인은 주장했다. 한때 변호인과 이수정 교수의 치열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입장에서 변론하더라도 증인 신문임을 염두에 두고 질문하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질문하라”고 둘 사이를 중재했다. 12차 공판은 오는 30일 열린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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