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살인 가스라이팅’ 수사보고에…이은해·조현수 “증거 동의 못해”

변호인 “편향적 해석 많아”
검찰 “재판 지연 의도 의심”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조현수(30)씨가 지난 4월16일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2번 내사보고서, 23번 내사보고서, 37번 내사보고서…동의하지 않습니다”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인 이은해(31)·조현수(30)씨의 공동변호인은 7일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 심리로 열린 두번째 재판에서 약 15분 동안 검사가 제출한 증거목록 상당수를 나열하며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거의 모든 내사착수 보고서, 수사첩보 보고서, 수사 보고서, 범죄분석 보고서의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 약 30분의 재판 시간 중 절반은 변호인이 증거 채택 부동의 의사를 밝히는데 사용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에 의한 살인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지다. 계곡 살인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당초 이씨와 조씨가 물에 빠진 피해자(이씨의 남편)을 구하지 않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재수사를 거쳐 이씨와 조씨를 ‘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해 이씨와 조씨를 기소했다. 이들이 수영할 줄 모르는 피해자의 심리를 지배해 구조 장비 없이 4m 높이 바위에서 3m 깊이 계곡으로 뛰어들게 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피고인 쪽이 수사 보고서 대부분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심리적 지배에 의한 살인 혐의를 방어하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이씨와 조씨의 공동변호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검찰 공소장을 보면 15장 중 10장은 이번 사건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이씨의 심리적 지배에 대한 이야기가 대다수”라며 “증거목록에 있는 수사 보고서 등도 피고인들이 심리적 지배를 통해 피해자를 살인한 부분을 입증하기 위한 부분인데 그러다 보니 편향적인 해석과 주관적 의견이 많이 들어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피고인 쪽이 대부분의 수사 보고서의 증거 채택을 동의하지 않으면서 피고 쪽 변호인과 검찰의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검찰 쪽은 “(사실상) 모든 수사 보고서를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재판 지연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변호인은 “재판에서 주관적인 의견은 걷어내고 재판을 진행하자는 것”이라고 맞섰다.

앞으로 진행될 증거 조사에서도 이 부분과 관련된 법적 공방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오는 8∼9월 증거 조사를 위한 집중 심리를 11차례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쪽이 재판 기일 변경을 요청하자 “지금 조사 기일을 많이 잡는 것은 피고인 쪽에서 모든 증거를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거절했다.

한편, 살인·살인미수·보험사기 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씨와 조씨는 이날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이들의 변호인은 지난달 3일 열린 첫 재판에서 ‘검찰의 증거 기록을 보지 못했다’며 혐의 인정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이승욱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