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12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이준희 기자
올해 4월 한국에 들어온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이슬람(31)은 9월 초 경기도 포천에 있는 가구공장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사장은 이날도 이슬람에게 아무런 일도 주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 없이 일과 급여를 주지 않은 지 3개월째였다. 이는 한국인 사장들이 이주노동자를 고분고분하게 길들이려고 사용하는 방법이다. 수입이 끊겨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슬람은 “제발 일하고 싶다”고 매달렸지만, 사장은 그를 넘어뜨리고 폭행했다.
이슬람이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를 찾지 않았다면, 그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에 있는 미등록 체류자 중에는 업주나 한국인 직원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사업장을 이탈하는 바람에 ‘불법’ 딱지가 붙은 경우가 많다. 현행법상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사용자가 허락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센터 덕분에 경찰에서 폭행 피해를 인정받았고, 일터도 옮길 수 있었다.
지난 12일 찾아간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는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임에도 도움을 구하러 찾아온 이주노동자들로 북적였다. 의정부센터는 경기 북부에 유일한 거점센터다. 의정부, 동두천, 포천 등은 물론 경기도와 인접한 강원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올해 10월까지 진행한 상담만 3만767건. 하지만 센터는 내년에 문을 닫는다. 정부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들어가던 예산 71억800만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12일 오전 10시께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거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준희 기자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6월11일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강당에서 열린 한국어·정보화 교실 수료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의정부센터에서만 1년에 약 1천명이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제공
문제는 정부가 외국인 인권을 지원할 센터는 내년에 모두 폐쇄하면서 국내에서 일할 외국인 규모는 12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라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방고용노동관서 등에서 상담·교육을 직접 수행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말한다. 김태일 의정부센터 교육운영팀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평일엔 일터를 벗어나기 힘들어 대부분 일요일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데, 주말에 쉬는 관공서가 이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센터가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형성한 네트워크가 무너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주노동자에게 한국 정부는 단속과 추방이 주 업무인 ‘갑’과 같은 존재다. 그러니 스스로 찾아와 마음을 열기 어렵다. 반면 센터에는 10년 넘게 지역에서 이주민과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온 직원들이 상주한다. 이날 찾아간 의정부센터에는 고용, 비자 문제는 물론 생활, 가정사 등 개인 문제까지 상담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한국 사회와 이주민 공동체를 연결한다. 센터에 오래 드나든 이주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출신국별 공동체에서 리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자국의 ‘신입’이 한국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센터를 통해 합법적으로 문제를 풀도록 돕는다. 이상구 의정부센터장은 “이런 네트워크가 사라지면, 돈을 노린 브로커가 판치고 범죄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양모민 상담사(왼쪽)가 12일 오전 11시께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와 대화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방글라데시에서 귀화한 양모민(50) 상담사가 이슬람과의 상담 기록을 보여줬다. 2개월 동안 21번(대면 13번, 전화 8번) 상담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양씨는 “정부 기관들이 여기처럼 간절하게 이 사람들을 챙길지 모르겠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양씨가 앉은 상담창구 앞에는 “센터 폐쇄에 반대한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서명지가 놓여 있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