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 신흥동 ‘긴모퉁이길’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설치한 방공호. 일제강점기 당시 이 일대는 일본인 관료와 사업가가 밀집해 살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탈과 강제 노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방공호’가 인천지역에 13개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시는 한국의 어두운 역사를 잊지 말자는 교훈적 가치에서 ‘네거티브 문화재’로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최근 인천 곳곳에 존재하는 일제강점기 방공호 시설 현황을 파악한 결과, 모두 13개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3일 밝혔다. 방공호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설치한 공습대피시설이다.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한반도 도심지와 군사지역 주변에 갱도를 뚫어 축조했다.
인천지역 방공호는 주로 일제강점기 개항장 주변과 일본의 군수물자 조병청이 있던 부평 3보급단 주변, 일본인 관료와 사업가 밀집지역 등에 남아 있다. 방공호에 대해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 없으며, 인근 주민들의 증언만 전해졌을 뿐 관리 주체도 불분명한 상태다. 시립박물관은 이 가운데 자유공원 공영주차장과 석정루 절벽 아래, 인천시역사자료관 등 3곳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였다.
인천 중구 자유공원 공영주차장 뒤쪽에 있는 방공호.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뒤쪽 공영주차장에 있는 방공호는 높이와 폭이 각각 2m 규모다. 깊이는 10m까지만 파악됐으며, 이후부터는 콘크리트로 막아 놓아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곳은 공원 관리를 위한 장비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 자유공원 석정루 아래쪽 절벽에 있는 방공호(높이 1.5m, 폭 1.2m)는 절벽 안쪽으로 방공호가 이어져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인천 중구청 뒤쪽 인천시역사자료관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업가의 저택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방공호 2개가 있었으나 1곳은 입구가 폐쇄됐다. 정문에서 정원 돌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있는 축대 아래에 ‘ㄷ’자 형태의 작은 석실형 방공호가 남아 있다.
인천 중구 자유공원 공영주차장 뒤쪽에 있는 방공호 내부 모습. 현재는 창고로 사용 중이다. 깊이 10m 이후부터 콘크리트로 막아 놓아 정확한 깊이는 알수 없는 상황이다.
이 밖에도 지금의 인천시장격인 인천 부윤의 관사를 비롯해 일본인 관료와 사업가가 밀집해 살던 신흥동 ‘긴담모퉁이길’에도 방공호가 존재한다. 이 방공호는 현재 철문으로 닫혀 있으며, 언덕 넘어 약 500여m 떨어진 옛 일본인 학교인 아사히 소학교(현 신흥초등학교)까지 연결돼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남아 있는 다른 방공호는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통째로 매몰됐거나 입구가 함몰돼 현황 파악이 쉽지 않은 편이다.
유동현 시립박물관장은 “방공호는 제국주의시대 일본의 침탈과 강제 노역의 증거”라며 “침략, 학살, 수탈 등 어두운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들을 지워버리면 증거를 잃어버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공호는 아픔을 기억하고 후세에 교훈적 가치를 전해야 하는 ‘기억유산’으로서, 네거티브 문화재를 지역 유산으로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사진 인천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