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인천대 총장실에서 지난 4일 만난 조동성 총장과의 모든 대화는 ‘공유가치창출’과 ‘혁신’으로 모였다. 2016년 7월 2대 총장으로 부임한 그는 4년 임기를 불과 7개월여 앞두고 이날 <한겨레>와 그동안의 성과와 남은 과제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한 대화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만 60여차례, ‘공유가치’도 30여차례 언급했다. 학교 구성원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예산 편성 과정부터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도록 ‘조직 구조의 틀’을 뜯어고쳤다. 아래로부터 혁신의 기반을 다진 뒤 그 위에 공유가치를 덧입혀 인천대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임기 동안 세계 최초로 추진한 대학운영 정책 6건을 포함해 모두 78개의 혁신 사례를 내놓았다. 그가 추구한 혁신과 공유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하부구조를 바꿔야 혁신이 일어난다
조직 하부 구조를 바꿔야 혁신이 일어난다. 경영혁신·전략 전문가인 그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했다. 취임 뒤 가장 먼저 단과대학·학과의 예산배정 기준을 학과별 ‘학생 정원’에서 개설한 강의의 ‘수강생 수’로 바꿨다.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시각으로 바꾼 것이다. 학과마다 인기 수업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수업방식을 개발하는 등 긍적적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인기 위주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학생들이 기피할 수 있는 전문분야 수업의 경우, 과목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조직 문화도 바꿔놓았다. 인천대는 구성원 모두가 공부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그는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직원 선생님들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장학금 지원은 물론, 근무 시간 조정도 배려하도록 했다”며 “기존 질서를 깨고 공부하는 문화를 만들었더니, 직원 선생님들이 교수와 학생을 더 많은 부분에서 이해하고, 학교에 대한 자긍심도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교직원을 ‘직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교직원 49명이 석·박사 도전에 나섰고, 이중 7명은 이미 학위를 취득했거나 수료했다.
혁신에는 ‘상징’도 중요하다. 그는 상향식 조직도를 거꾸로 하향식으로 제작·배포했다. 모든 직원 250명의 이름이 포함된 조직도 맨 위쪽부터 말단 직원을, 가장 아래쪽에는 총장을 배치했다. “그동안 조직도에 누락돼 있어도 무관심하던 이들이 이제는 포함해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마음 자세가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보여주기 쇼’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그는 이같이 받아쳤다. 취임 뒤 총장실도 기존 면적의 3분의 1로 줄이고, 비서실도 반대쪽으로 옮겼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출입이 가능하게 됐다. 그의 이런 결정에 단과대학장 7명도 각각 사용하던 사무실을 하나로 통합·운영하며 동조했다. 그 결과 2개 층의 공실이 생겼고, 외부에 있던 조직이 모두 본부로 이전할 수 있게 됐다.
본부에서 총괄하던 예산 편성 권한도 단과대학으로 넘겼다. 본부는 단과대학에 예산 편성 기준의 범위만 제시하고, 단과대학에서 의사 결정한 사항에 대해 관리만 하는 방식이다. “한 학과를 방문했는데, 아직 쓸만한 컴퓨터 50여대를 쌓아뒀더라. 본부에서 일괄로 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면서 생긴 부작용이었다. 권한을 넘겼더니 불필요한 예산 낭비가 줄었고, 학과마다 혁신 아이디어도 막 쏟아지더라.” 그가 예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본부와 단과대학 간 상하관계를 협력관계로 바꾼 이유다.
그는 학생 1명당 체육 및 악기연주를 하나씩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한 ‘일인일기’ 혁신 과제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공교육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어서 제안했지만, 대학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반대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우리사회는 현재 지성뿐 아니라 사회성, 감성을 함양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대학이 그런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는 세계 최초로 공유가치창출 예산편성도 도입했다. 공유가치창출이란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국가의 이익까지 고려해 경영하는 것을 뜻한다. 인천대는 2016년부터 예산 편성 때 ‘대학의 사회적 역할’도 평가해 예산을 배분하도록 지침을 변경했다. “기존에는 전체 예산 중 1%, 이런 식으로 지역사회 기여 예산을 수립했다. 이제는 예산 심사 때 연구과제 수행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삶의질 개선 효과, 자연환경 보호 등 사회적 가치와 공헌도 함께 평가한다.”
대표적인 사업이 인천시민 1만 명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해 질병 예측과 예방 연구에 활용하는 ‘게놈(생물체를 구성하고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모든 유전 정보가 들어 있는 유전자의 집합체)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1만명의 유전체 정보를 모아 다양한 질병의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을 인공지능 기법을 통해 분석, 암이나 신경질환, 자가 면역 질환과 같은 한국인의 만성 질병 예방과 국민의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한다. 인천대는 유전자기업인 이원다이애그노믹스, 의사로 구성된 기업 지노닥터, 지역병원 등과 협약을 맺고 지난해부터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유전체 정보 제공에 참여한 그는 “기부자들의 유전체 정보와 질병 정보는 향후 질병 예측과 예방, 한국인 맞춤형 치료제 및 진단법 개발 등에 활용된다”며 “공유가치창출에 부합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대학, ‘사회적 공헌’은 시대적 과제
7개월여 남은 임기 동안 새로운 ‘대학평가시스템’ 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한자대학동맹 회장인 그는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열리는 ‘한자대학동맹 콘퍼런스’에서 새로운 대학평가시스템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한자대학동맹은 지난해 네덜란드 한제대학 주도로 미국·아시아·유럽·아프리카 10개 대학이 모여 만든 대학공동연합체다. 12세기 유럽 상인 단체에서 시작해 190개 도시 동맹으로 발전한 한자(Hansa)동맹에서 의미를 따 왔다. “기존 세계대학 랭킹시스템은 연구실적, 학생취업, 평판도 등을 지표로 평가한다. 혁신교육이나 사회 공헌 등의 반영은 미흡하고, 대학 평판이라는 모호한 지표로 불공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새로운 대학평가시스템은 논문보다는 혁신프로젝트, 취업보다는 창업, 윤리적 가치·사회적 책임 포함한 인성교육, 사회적 공헌 등을 지표로 각 대학 총장이 교차평가해 순위를 정한다.” 다만 그는 “시대 요구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평가시스템을 도입해 평가 기준을 다양화하자는 것”이라며 “기존 평가시스템을 없애자는 취지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인천대도 한자대학동맹에 78개의 혁신프로젝트 사례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는 혁신 아이디어를 낸 실무자가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하는 ‘책임실명제’를 적용했다. 그는 “누구의 ‘혁신 아이디어’인지 명확히 해 그 공로와 함께 지식재산권도 인정하는 것”이라며 “‘오너마인드’가 아닌 ‘오너십’을 갖도록 하는 것이 혁신프로젝트 성공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송도 땅 문제와 채용비리 의혹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천대는 최근 인천시로부터 조성원가에 받기로 한 송도국제도시 땅을 기존 33만㎡에서 3분의 1가량 줄어든 9만9천㎡로 축소하는 데 합의해 교수회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는 “땅의 소유권을 확보 못한 상황에서 기업 유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인천대가 알앤디(R&D)기관을 유치하면, 용지를 제공하는 전제 조건을 없애고, 사전에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라며 “매입 비용 등을 고려하면 규모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또 임기 중 오점으로 남은 교수채용 비리와 관련해서도 “학교 쪽의 검토 결과를 토대로 채용 심사를 연기한 것인데, 징계까지 받게 돼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총장은 지난해 1월 교수채용 과정에서 특정인의 면접 일정 조정해 준 혐의로 교육부의 징계요구를 받아 최근 ‘견책’ 처분을 받았다. 경찰 수사에선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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