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위기에 놓인 인천 신흥동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지어진 오쿠다 정미소. 인천시민사회연대 제공
개항·일제강점기 역사를 품은 인천의 근대건축자산이 잇따라 헐리고 있다. 인천시가 근대건축자산 보존·관리에 나섰지만 민간소유의 개인재산이어서 속수무책이다.
인천 중구 개항로 45번길에 있는 인천감리서(고종 때 통상업무 등을 관장·감독하던 행정기관) 옆 2층짜리 목조건축물(240여㎡)이 지난 8일 철거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인천부립 직업소개소에서 운영한 공동숙박소로 알려졌다. 취업알선과 주거지가 없는 구직자를 위한 공간이었다.
앞서 2016년부터 중구에 있는 일제강점 시대에 지은 송주옥(1930년)과 조일양조장(1939년), 동방극장(1941년), 애경 비누공장(준공 연도 1902년) 등을 비롯해 근대산업유산으로 평가받는 동구 신일철공소 등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에다 여공들의 아픔이 서린 중구 신흥동 ‘오쿠다 정미소(1930년대 추정)’도 철거될 예정이다. 이 건물을 철거한 터에는 지상 20층짜리 오피스텔 2동이 들어선다. 이미 지난해 10월 건축심의까지 통과한 상태다. 오쿠다 정미소가 들어선 신흥동 일대엔 여러 개의 정미소가 들어서 있었지만, 현재 오쿠다만 남아 있다. 당시 여성 선미공들이 남녀간 임금 차별과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노동운동을 펼친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등 인천지역 46개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공동성명을 통해 “인천시는 당장 정미소 건물 철거부터 막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며 “근대건축자산에 대해 적극적으로 시 지정 문화재나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1880년대 개항기부터 1950년대까지 지어진 지역 내 210여개의 근대건축자산 가운데 상당수가 철거 위기에 놓여 있다. 이들 근대건축물이 민간 소유인데다, 소유자의 동의 없이는 ‘시 등록문화재’ 지정도 하지 못해 보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 등록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시가 지난해 인천사범학교(1952년) 등 근대건축물 6곳을 문화재청에 국가 지정 등록문화재로 신청했지만, 3곳이 부결됐다. 3곳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건축 관련 기록이 미비해 등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50년 이상된 근·현대 시기의 건축물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건축물의 소유자 동의를 얻어야 등록문화재 지정도 가능하다”며 “소유주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혜택 부여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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