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전교조 해직 교사 1호’ 신맹순씨가 지난 8일 폐지를 모은 수레를 끌고 있다. 사진 이정하 기자
“고물 줍는 노인입니다.” 지난 8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동암역 인근에서 만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노태우 정권 때인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구속된 ‘제1호 해직 교사’ 신맹순(78·사진)씨다. 그는 그해 8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에서 전교조 관련 첫 양심수로 지정하기도 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가 교원노조법에 따른 노동조합 지위를 회복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 날’을 떠올렸다. “1989년 6월 납치당하듯 끌려가 구속 두달 남짓 만인 8월25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의 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폐지를 줍고 있더라. 4남매 자식들 교비는 물론, 차비 줄 돈이 없어 밤마다 몰래 폐지 줍는 아내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30년이 넘도록 고물이나 폐지를 주워 팔아 살고 있다. 요즘은 고물값마저 급락해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돌아다녀도 하루 1만원도 채 벌지 못한다.”
그의 나이 47살 때 쫓겨나 가족의 삶까지 무너졌다. 가난보다 무섭다는 ‘빨갱이’ 낙인에 이웃과 지인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집 주변엔 폐지만 쌓여갔던 것이다. 그는 1995년부터 7년 동안 인천시의회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시의회 의장까지 지냈다. 그때 시의원은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신맹순씨는 현재 위암 투병중이라고 밝혔다. 사진 이정하 기자
31년 전, 전교조 탈퇴각서를 쓰지 않아 해직된 교사는 신씨를 포함해 1467명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는 이들에게 ‘민주화운동 관련자 증서’를 주기도 했다. 현재 위암 투병 중인 그는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상실된 교사 지위나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학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해직 교사들을 끝내 외면해선 안 된다. 교사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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