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옹진군 영흥도로 진입하는 영흥대교 초입에 ‘쓰레기매립장 결사반대’라고 적힌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다. 뒤로 하얀 수증기를 내뿜는 영흥화력발전소 굴뚝이 보인다. 이정하 기자
‘북극 추위’가 한반도를 강타한 지난 6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높게 뻗은 영흥화력발전소 굴뚝들에서는 하얀 수증기를 쉴 새 없이 뿜어냈다. 이곳에서 1㎞ 남짓 떨어진 인천시 자체 쓰레기매립장인 ‘인천에코랜드’(가칭·14만8500㎡) 후보지 어귀에서는 ‘우리 마을을 선거의 도구로 사용하지 마라’, ‘영흥도 쓰레기매립장 결사반대’, ‘우리 마을 주민 다 죽이고, 쓰레기매립장 조성하라’ 등이 적힌 펼침막 수십개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광인바이로텍 등 민간법인이 소유한 매립장 후보지는 원래 영흥화력발전소 제3회처리장으로 계획됐던 곳으로 과거 양식장 시설 일부가 남아 있었다. 시는 이곳에 지하 30~40m, 지상 0~10m로 대체 매립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지상은 돔 형태로 만들어 먼지가 주변 지역에 날리는 것을 막을 계획이다.
앞서 인천시는 4자 협의체(환경부·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대체매립지 조성 계획’이 답보 상태에 빠지자 지난해 10월 ‘2025년 수도권매립지 매립 종료’를 선언하고, 자체매립지 건립 추진에 들어갔다. 영흥도 후보지는 인천연구원의 자체매립지 입지선정 조사 연구용역에서 최적지로 추천된데다, 소유자가 공모에 응모하면서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날 찾은 인구 63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인천시청에 데모하러 갔어. 수십년을 석탄재와 싸워 왔는데, 이젠 쓰레기가 웬 말이여.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지. 아무렴.”
매립장 예정지에서 200여m 떨어진 외1리 마을회관 근처에서 만난 한 80대 남성이 역정을 냈다. 영흥도 주민들은 인천시가 에코랜드 후보지 발표 이전인 지난해 11월2일부터 인천시청 앞에서 매립장 조성 반대 집회를 이어오고 있다. 영흥도는 물론 선재도까지 단체들과 동호회, 교회 등이 내건 매립장 조성 반대 펼침막으로 뒤덮였다.
인천 자체 쓰레기매립장인 인천에코랜드 후보지로 향하는 길목에 매립장 건설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정하 기자
영흥도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영흥화력발전소 건립 과정에서 주민 사이 갈등으로 큰 아픔을 겪었다. 당시 발전소 유치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은 물리적 충돌 끝에 수십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이 가운데 일부는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성모 외1리 이장(영흥도 외1리 환경대책위원장)은 “조용하던 우리 마을이 화력발전소 탓에 쑥대밭이 됐다. 이제 그 아픔이 아물어 가는 시점에 또 100억원 규모 인센티브 운운하며 주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 된 마음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 건강을 지키고, 환경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싸우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강 이장은 “해조류, 조개류(굴·바지락)와 쌀·포도 등을 생산하는 농·어업 종사자가 80%에 이른다”며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서면 누가 영흥도산을 찾겠느냐”고 물었다.
매립장 후보지 발표는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3.3㎡(평)당 60만~70만원 하던 게 지난해 11월12일 매립장 후보지 발표 뒤 40만~50만원으로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유신일 영흥 래미안부동산 대표는 “영흥도 건물·땅과 화성시 땅을 맞교환하는 거래 건이 매립장 후보지 발표 다음날 취소됐다. 화성시 땅 소유자가 ‘매립장이 들어오는 땅을 살 수 없다’며 계약을 해지했다. 현재 후보지 반경 3㎞ 지역은 거래도 없고 매물만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1㎞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인천에코랜드 후보지. 인천시 제공
매립장 건설에는 이웃인 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 주민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영흥도는 육지에서 안산시 대부도와 옹진군 선재도를 잇는 선재대교, 선재도와 영흥도를 잇는 영흥대교를 건너야 닿기에, 폐기물 이송차량은 시흥 오이도와 안산 대부도 중심지를 관통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은 교통체증과 비산먼지(날림먼지)로 인한 환경피해가 우려되고 관광지 이미지도 훼손된다고 주장했다. 전영민 대부동 통장협의회장은 “주말이면 10만명이 찾는 관광지다. 지금도 교통체증으로 시화방조제를 건너는 데 두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대부도 관통도로 양쪽에 있는 식당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영흥 주민과 연대해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안산시와 시흥시는 지난해 11월 영흥도에 매립지 건설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인천시에 전달했다. 인천시는 자체매립장은 20톤 트럭 8대 분량인 소각재만 묻는 시설인 만큼 환경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설득하는 중이지만 반발은 여전하다. 김준기 대부동장은 “영흥화력발전소도 (연료 등) 해상 수송으로 육로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대형 트럭들이 대부도를 관통하고 있어 피해가 크다”며 “안산시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자체매립지 선정과 관련한 문제가 복잡해지자,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은 ‘매립지 특별위원회’를 통해 재공론화 과정에 들어갔다. 박남춘 인천시장과 같은 당 소속인 장정민 옹진군수를 비롯해 시·군별 소각장 후보지로 선정된 구청장들도 반발하자 당 차원에서 봉합에 나선 것이다. 특별위원회는 기초단체장들과 시의원, 군·구의원, 전문가로 구성됐다. 특별위원회는 이번주(1월11~15일) 중 영흥도 후보지 현장을 둘러보고 주민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들은 옹진군 쪽이 제안한 옹진군의 한 무인도를 대체 후보지로 함께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 섬은 인천항에서 60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환경단체가 “멸종위기종인 동식물이 서식하고, 자연경관이 뛰어나 보존가치가 크다”고 주장한 곳이어서 또 다른 논란이 예상된다. 인천시는 주민 반발을 의식해 애초 영흥도 등 후보지까지 쓰레기를 해상 수송하는 방식도 검토했으나, 운송 비용과 운반 여건 등을 고려해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위원장을 맡은 허종식 의원(동구미추홀구갑)은 “공론화 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피고, 최적의 대안이 있는지 검토할 것”이라며 “현장방문과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2월 말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결과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가 인천에코랜드 설계·운영에 반영할 ‘모범 사례’로 꼽고 있는 충북 청주시의 폐기물 매립시설. 이 시설은 지하 40m 깊이에 폐기물을 매립하고, 지상 47m 높이의 에어돔을 설치해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운영된다. 인천시 제공
한편, 박남춘 인천시장은 최근 충북 청주 돔 형태 폐기물 매립시설을 방문하는 등 자체매립지 조성 추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인천시는 지하 40m 깊이에 폐기물을 매립하고, 지상 47m 높이의 에어돔을 설치해 외부와 차단된 상태로 운영하는 청주 폐기물 매립시설을 ‘인천에코랜드가 추구하는 설계·운영 모범 사례’로 꼽고 있다. 시는 민주당 매립지 특별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오면, 시의 계획안과 비교해 매립지 후보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할 방침이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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